-사쿠라 조갑제 기자는 ‘한국교회’에 〔압도적 골칫덩이〕와 〔고민덩어리〕-

조갑제 기자의 세계관은 놀랍다. 보수유권자는 조갑제 기자의 경상도 사투리에 터잡아 신뢰를 보냈지만, 조갑제기자는 뼛속까지 전라도 종족신앙 의리론으로 정주행하면서, 북한공산당처럼 보수를 조롱 표현과 비슷한 언저리의 표현을 남발한다. 영어권 진보가 보수를 비판하는 표현과, 북한공산당이 보수조롱하는 표현은 번지수가 다르다. 조갑제기자의 표현은 압도적으로 ‘베이징-전라도 씨족종교’영향에서 태어난 북한공산당의 보수세력에 대한 조롱에 가깝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러하다.
㉮. 유신체제는 영남 왕국이다.
㉯. 1인 독재체제에 동의 안하는 이들에 색깔론 논리를 붙였다.
㉰. 유신체제는 6.25 전쟁 트라우마에 고통받는 일반국민의 심리 위에 지어졌다.
이때 김대중 민주당 지지자들은 ‘색깔론’이라 하여, 정말로 공산주의를 연구하고 디테일하게 반대하는게 아니라, 경상도 씨족신앙으로 감투를 고정하기 위해 전라도 김대중 지지자를 낙인찍는 표현을 말했다.
색깔론이란 말은 곧 영남 왕권제 유교에 종속된 자아의식을 전제한다. 이때에, 피해를 겪었음을 여과없이 밝히는 사쿠라 조갑제기자는 이제,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나, 非 전라도사람들에게는 고통과 억울함과 원통함의 기억 뿐인, 노론독재에서 조선공산당 및 남로당에 이르는 호남 종족종교에 종속된 자아의식을 표현한다.
한마디로 말하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사회란 무엇인가?
스탈린주의, 혹은 히틀러 파시즘에 해당되는 지배질서를 안하도록, 로마법 서양법주의와 기독교 신앙에 토대된 질서를 지키는 사회다.
한국사를 간단히 요약하자.
㉮ 조선시대에 한때 한반도는 중국에 사대종속 상황이었다.
㉯ 소학과 삼강오륜은 농촌마을 마다 지배이념이었다. 이는 중국에 종속된 무의식을 유도한다.
㉰ 일제 시대에 기독교는 개화파 마을에 소학과 삼강오륜의 대체. 그리고 文學은 공산마을에 소학과 삼강오륜을 대체했다.
(여기서, 의미심장한 부분은 서양의 ‘리터러춰’ 번역어와 무관한 文學이 일제시대에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전라도유교로 읽는 스탈린 사회주의에 맞게 농촌질서를 설정하는 논리였다고 본다. 문학이 그 질서를 대체한다는 것은 이야기로 표현된 감정적인 덩어리로, 메시지를 전달하여 계몽하는 기능이었다는 말이다.)
㉱ 일제 시대에 한국교회는 20-40만 인구. 한반도 공산주의의 코어였던 동학은 300만 인구였다. 1960년대 초반도 이러한 문화지형이었다.
㉲ 민족복음화운동은 동학 인구의 꾸준히 기독교인의 개종 움직임이었다.
한국교회의 현 상태를 상징하는 현상이 CTS 의 방송에서 나타났다. <다시 복음으로, 다시 십자가로>라고 슬로건은 거창하다. 그 방송사에서 오래 함께 한 노인이 된 찬양 리더들이 나선다.
문제는 <복음준행>도 아니고, <십자가>에 대해서는 이게 뭔데요?
어렸을 때 동학 믿다가 개종하신 노인분들은, 80년대 후반의 문익환 목사의 반대 논거 이후로, 차츰차츰 사도바울이 말하는 저주 받을 다른 복음으로 쏠려갔다.
민족신화의 세계라는 몽상적 유아적 논리로 칭얼거림으로 돌아갔다.
한국교회는 압도적으로 복음주의 교회 외형이 많다. 바른 교의와 성경중심주의로 진리의 자기 책임원칙이 기준이다.
그런데, 옛날에 원불교(사탄교)믿었거나, 전라도 동학 믿다가 개종한 분들은 이게 불편하게 여겨진 것이다.
십자가 신앙을 제대로 알았다면, 1인독재를 응원하거나지지 못한다.
더불어,..... 십자가 신앙을 제대로 알았다면, 원불교 1당독재라는 악마적 체제를 결코지지 못한다.
CTS에서 다시 십자가로 란 말이 얼마나 공허한 소리인가 보여준다.
원불교 일원상진리 교리를 원불교 백낙청은 중공식 당국가주의로 쓴다. 기독교신앙에 입각하여 색깔론 피해자 구제해준다고 하다가, 모택동 공산당 반동분자 피해로 몰리는 위험에 한국교회는 노출된 것이다.
그러면 답은 매우 심플하다.
원불교(사탄교) 백낙청의 원불교 교리안에 성경의 예수신앙 있다는 전제의, 전라도 왕국에 종속된 정치이데올로기로서 복음통일은 당연히 틀렸다면서 예수님앞에 죄고백이 있어야 할 부분일 것이며, 호남에 기독교민주화운동을 정말로 믿었던 신자들이 있다면, 원불교 교리로 중공식 일당독재 당국가주의로 가는 것에 회개하고 탄식하는 흐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없다.
그러면 호남에 기독교인이 아무도 생각 못했다?
지금 사쿠라 조갑제기자의 보수조롱에서 주체사상 김일성 논리의 남한 보수 조롱어법이 보이는게, 필자만 보이는게 아니다.
성경속에서 선지자는 하나님과 계약을 지키기 위해서, 아니오! 아니오! 하다가 별별 수난을 다 당했다. 신약을 이해하려면 구약을 이해해야 한다. 개신교중의 사도신경 신앙고백집단은 구약의 신약화로 읽는 신앙집단이다. 호남 기독교인에게도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다 똑같을 것이다. 말씀 준행 못하면 하나님께 심판받고, 말씀 준행하면 복받는다. 그것이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에 투명하다.
그런데, 어렸을 때 동학 믿고 군사정권 때 정치적 개종하고, 지난 30년간 동학에 깔린 민족신화(믿는 놈은 유아적 어리광)에 빠져서, 젊은 세대에 계속 고통을 빠뜨렸다.
유신체제 1인독재와 스타일은 다르되(경상도식에서 전라도식으로), 조선왕조식 지배질서로 권력에 속하지 않은 이들을 억울함에 빠뜨리는 지배질서다.
2025년 한국교회는 어른이 없다.
사회의 민심을 대변하는 인사의 파워는 대단히 중요하다. 뒤집어 일반인들은 진실을 알아도, 까이기 무서워서 못나선다.
사쿠라 조갑제기자의 자연스러운 자아관념은 개신교 박해를 당연시하는 친북친중좌파의 아버지 신채호 선생 세계관이 폭주하는 가치관이다. 이 전제로 지속가능한 경제도 불가능하지만, 가능한들 개신교인에겐 허망한 성장일 것이다.
원불교 백낙청 사단 강만길 사관에 깔린
20년대 좌우연합, 30년대 좌우연합, 40년대 좌우연합, 50년대 좌우연합, 60년대 좌우연합, 70년대 좌우연합, 80년대 좌우연합, 90년대 좌우연합등은,
대동단결, 빅텐트, 민주연합, 통일전선, 등으로 표현되는데, 실제는 일당독재인 것이다.
이를 국민이 1차례도 추인하지 않았고, 지역주택조합 홍보관 언어에 사기당하는 어법상태로 공소시효 중단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미국 경제유튜브는 미국 중간선거 이전에 세계 경제위기를 예상한다. 이는 한국에도 닥쳐서 일부 가정에 현금 수입의 고갈이란 위기를 초래한다. 이럴 때일수록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공정한 법은 중요하다.
경상도 씨족 종교가 끼었다고 영남 교회에 반성문을 요구한 호남교회는 하나님이 보시고 있으니, 쌍무계약으로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됨의 실행을 해야 할 때다.
한국교회에는 2025년에 87년 박종철 사건 때 김수환 추기경님 같은 어른이 없다.
그 여파가 조갑제기자의 사쿠라짓 등장이다.
CTS 방송은 기독교신앙 입문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노인에 발목잡힌 한국교회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기독교세계관으로 법치주의도 보고, 정치도 보고, 경제도 보고, 사회도 보고, 윤리도 보고, 국제관계도 보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에게 하소연하는지 묻고 싶다.
복음준행을 해야 기독교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