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씹논란’은 87년 6월 항쟁의 본질이 ‘복음사기 항쟁’이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호구가 됐기 때문에 빚어진 것 –군사정권 시대를 이해해야 현실의 한국정치가 보인다-
 

‘읽씹논란’/ ‘르노 페미논란’ / ‘채상병사건을 둘러싼 윤석열 정부 끌어내리기’
 
이것이 모두 본질이 같다. <씨족사회>에 내재된 원색적 폭력 유전자의 대 방출이다. 江과 山이 나뉘는 경계로 귀족은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기에, 다른 이들에 乙임을 거부한다. 동시에, 신분제로 종속된 이들은 항시 지주 사대부를 살해하는 꿈을 꾼다.
 
최근 한국정치에서 대량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모두 구조적 유사성을 띠고, 조선유학사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쉽게 朋黨 이 개별로 우주의 중심임을 자처하는 문제임을 안다.
 
조선시대 사극으로 ‘김건희 여사’ 앞으로 줄 세우는 것은, 민주당에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등과 연결된 민족해방 통일전선에 줄세우는 호남동학파의 민중민주주의 줄세우기와 본질이 같다.
 
황당함 중에 황당함은 디지털이 무조건 뚫리는데 핵심 대화를 그것도 통신보안이 전혀 안되는 “카톡”으로 하는 것도 문제이고, 씹혔다고 ‘甲乙’ 관계에서나 가능한 노발대발이 나오는 것도 문제다. 대구 경북지역에서 윤석열 정부에서 이해관계를 가진 귀족 집단을 줄세우지미나, 수도권 총선 폭망 때부터 보수적 정서의 유권자들의 ‘어리둥절’은 사라지지 않는다.
 
원불교 촛불 마왕 백낙청은 노론독재의 정서가 조선공산당을 거쳐, 소태산 원불교가 몰빵한 인민공화국으로 이어지고, 이것만이 근대국민국가이며 미래에 다가온다는 종족신앙을 가지고 있다.
 
백낙청의 원불교(사탄교) 고려연방제는 김건희 여사의 윤석열 앞에 대구경북을 줄세우는 종족신앙과 같다.
 
기필코 북중러 영역으로 가서, 자유민주 헌정질서 영역과 연결된 모든 라인이 백낙청 용어로는 ‘발본적’(뽕빨내다 그런 뜻이라 본다)으로 잘려지는 것을 원한다. 국민의 힘 입장이 백낙청 꼭두각시로 김병주가 나서서 하는 것에, 실수!! 라고 하면서 대승불교로 서양국방학으로 공산진영을 막는 것이면서도 막는게 아니라는 대승불교로 대한민국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대승불교화해는 원불교(사탄교)인끼리의 개인적 종교행위를 넘어서 국가적으로 강요되면 종교범죄다.
 
백낙청 생각은 이재명=전봉준으로 자유민주 헌정질서를 확 뒤엎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 의지는 명백한 국헌문란을 조건으로 거는 내란이다. 조선일보는 원불교(사탄교) 정신에 입각하여 명백한 내란을 묻어준다. 이는 보수유권자 및 조선일보 독자에 피해를 전가하면 되잖아. 보수유권자 및 조선일보 독자는 ‘국민기본권 사기’를 쳐도 증명을 못하는 것을 악용한다.
 
르노 자동차 페미논란의 본질도, 원불교(사탄교) 통일운동에 얽힌 일제 강점기 소련 공산주의 연결의 소련 여성주의 문제다. 여성의 억압에 대한 극복과정이 문제가 아니라, 노론사대부 양반 마님의 영웅주의로 군사정권 때 가재도구 부수는 짓도 여성이 하고 싶고, 군대 얼차려로 사병을 가해하는 것도 여성이 하고 싶고, 기타 남성이 봉건전제주의로 하는 모든 것을 여성이 하고 싶다는 것을 깔고 있다. <젠더 갈등>을 빙자한 ‘원불교 종족주의’ 문제다.
 
<읽씹 논란>은 보수분열로 탄핵에 낚이는 것 뿐만 아니냐는 우려 뿐만 아니라, 원불교(사탄교)백낙청의 윤석열 정부 끌어내리기와 자유민주 헌정질서 임의 중단과, 원불교(사탄교)조상이 못했던 인민공화국을 통일신라 이후의 후백제처럼 하려는 우려도 문제다. 뿐만 아니라, 통일부에 엮어서 이재명만 지지하면 된다는 차원의 ‘일차원적 계집년’들의 아무 때나 아무데나 남성 야유하는 정신도 문제다. 모든 측면에서 종족 에너지가 대방출한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박종철 때에 하셨던 발언 짤이 예언처럼 다가온다.
 
87년 6월 항쟁이 정말로 기독교민주화운동이면 이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김대중 진영은 전두환 민정당의 국정교육이 유교적 충성의 종족주의 감정으로 일차원적 파시즘 자아로 주장했다.
 
그런데, 원불교(사탄교) 백낙청의 ‘일원상진리’ 자아가 전두환 민정당 국정교육 자아 이상의 일차원적 파시즘 자아다.
 
김건희 여사는 읽씹 논란에서 남들이 어떻게 보는가를 모른다. 김건희 여사에 줄 선 대구 경북 동학도들은, 대구 경북 아닌 이들이 어떻게 보는지 모른다.
 
민정당 국정교육이 남로당 인민공화국측에 어떻게 보이는지, 동시에 해외에 어떻게 보이는지 무관심했다. 전두환 정권을 떠받쳐준 반공층만 유지하려 했다.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정권을 받쳐주는 대구 경북 동학도 귀족들 줄세우기. 원불교(사탄교) 백낙청은 원불교발 민중민주주의 민족해방 통일전선 줄세우기. 르노 페미논란은 여성부에 엮인 나라 팔아먹을 때 이재명만 지지하는 골빈 계집연합의 일차원적 자아를 넘지 않는다.
 
민주화운동사에서 김대중 김영삼이 전두환에 저항하며 했던 모든 잣대가 고스란히 되돌아간다.
 
특히, 군사독재 기득권자가 문재앙에 줄 바꿔타면서 이런 종족충돌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에서, 군사정권에서 종족주의 장려하면 나라 망한다고 자신들이 했던 말을 몰랐을까 싶다. 보수유권자가 망하지 자기가 망하냐?
 
‘읽씹논란’에는 아주 간단한 문제가 내장돼 있다.
 
87년 6월 항쟁은 유신체제 없이도 붕당으로 나라 안 망한다는 약속으로 민주헌법 쟁취운동과 연결됐다.
 
1인 독재자 씨족국가가 아니라, 서양법으로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법은 엘리트가 진리를 독점하면 안된다.
 
군사정권은 저임금 수출경제로서 국가가 기업의 원가관리에 직접 개입했다. 지금의 김대중체제는 부동산에 있어서 경제펀더멘탈과 무관하게 부채버블로 부풀렸다.
 
군사정권에서 민주화운동이 약자를 위한 기독교가 존재했지만, 지금은 약자를 위한 기독교가 힘이 없다. 왜냐하면, 군사정권 저항운동을 하신 분들에 ‘돈다발’이 주어지니, 진정성이 사라진다. 동시에, 역대급으로 부풀어 오른 부동산 부채버블 돈 보따리에서 열외된 일반인들은 정치범을 각오하고, 기득권자와 한탕 까리 할 생각을 꿈도 꾸지 않는다.
 
한국은 1500개 양반가문이 있다.
 
당연히 씨족이 다른 사람끼리 어울려산다. 흡족하게 마음에 드는 사람들은 남녀간의 내연관계, 아니면 친족 뿐일 것이다. 당연히,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마음에 안맞을 수 있다.
 
그러나, 한동훈에 대하여 보수유권자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 이전과 달리 계약이후는 쌍방 책임이 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헌법 질서를 누가 지키나? 그 국가의 귀족이 지킨다. 그런데, 씨족주의로 감투만 생각하고, 씨족적 나르시시즘을 밝힌다. 군사정권 국정교육에 깔린 것과 달리 미친년 널뛰기로 종족마다 다 갈린다. 이것이 시장경제에서는 ‘사기’ 의 홍수로 나타난다.
 
유신독재 없는 서양법 구현은 그 당시에 김대중 김영삼 측 학생운동 먹물이 했던 말,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같은 양심의 구현이 필요하고, 그 양심끼리의 상호검증이 필요하다.
 
필자는 남로당 인공과 연결된 원불교 종족과 일치되는 국가도 부정하고, 이승만 자유당 때 기득권이었던 대구 동학도 와 일치된 국가도 부정한다. 그런 국가를 안한다는 의미로서 6월항재의 민주헌법 쟁취운동본부였다. 그런 의미로, 한번도 이런 일을 못 봤기에 헌법 개정논의는 절대 동의 못한다. 이런 상황에 헌법개정은 6월항쟁이 사기항쟁인데 그 사기의 완전 범죄의 달성을 추인하는 셈이 된다.
 
결국, 문제는 심플하다. 6월 항쟁 깃발군중이 헤겔변증법 이야기했다. 그 차원으로 사람이 씨족이 다른 이들이 뭉쳐서 사회를 만들고, 국가를 이루고 시장을 이룬다는 도덕율에 있다.
 
예수신앙은 씨족주의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표상과 단절을 의미한다.
 
필자는 이승만 이용사업회, 박정희 이용사업회와 원불교 백낙청의 ‘인민공화국 종족의리’지킨다는 종족주의로 모든 형태의 반 헌법적 동학도 종족신앙을 부정한다. 이에 기반한 학문의 자유, 종교의 자유 침해가 정면 의제화가 돼야, <읽씹 논란>이 해결된다.
 
결국, 모든 국민이 동의했던 서양법 국가란 무엇이가?
 
요약하면, 군사정권에서 왕 중심의 봉건제..... 왕이 전방위적으로 권위주의로 하는 그런 중국식 봉건제에서, 김대중체제에서 이완용이 나라 팔아먹기 딱 좋게, 사대부는 종족으로 다 갈리고, 일반인들은 노론 분파에 함부로 개길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군사정권에 1인 왕에 복종하는 기독교를 비판했던 세력들은, 더 더 더 원불교(사탄교)에 교리혼합하여 기독교신앙 진실에서 멀어졌다.
 
이를 정면으로 의제화할 수 있어야 사회의 양심은 회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