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타임즈> 전임 도쿄 지국장
핸리 스콧 스토크스(Henry Scott Stokes)의 회고 내용 중에서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도 속였던 ‘가짜(fake, 짝퉁)'
한국에서 1980년 전두환이 군의 실권을 장악하자, 북한은 “휴전협정을 백지화한다”라고 선언하여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졌다. 같은 해 6월, 미국이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자, <뉴욕타임즈(NYT)>의 기자로서 필자는 동행했다.
- 김일성 주석과 만나서 평양 교외에 있는 궁전에서 5일 동안 지냈다. 악수했던 김일성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어 병에 걸린 환자와 같았다. 특사 소라즈 의원과의 회담에는 나서지 않았지만 감시자 역할로서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이 동행했었다.
한국의 김대중 전임 대통령에게는 30회 이상이나 단독 인터뷰를 했다.
- 김대중은 항상 ‘민주화운동의 투사’라고 하는 이미지를 연출했다. 미국의 민간 조직과 언론이 후원을 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즈>는 그 선두에 섰었다. (내가) 처음으로 (그를) 만났던 것은 1969년 봄이었다. 일본과 미국에 채류하며 민주화를 추진하는 인권 활동가로서 주목을 모았다.
1973년 8월, 도쿄의 호텔로부터 한국 중앙정보부(KCIA)에 의해 납치되어 선상에서 살해될 위기에 처했는데 군용기가 선회하며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 이후 서울의 자택에서 연금되고 1980년 5월 다시 체포되어 광주사건이 일어난다.
- 1980년 봄, 민주화운동의 중심 인물로서 다루어져 사설에서도 “김대중은 처형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논진을 폈던 적이 있다.
(김대중이) 짝퉁(짜가, fake)이라는 것은 나의 부인 ‘아키코’가 처음 알아보았다.
- 여자의 직감은 뛰어나다(웃음).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잘 대해주고 나에게 접근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측면에 나의 부인 아키코가 주목하게 되었다. 잘 관찰해보니, 항상 보란 듯이 움직이는 ‘연기자’였다. 그는 '사기꾼’이며 사람들의 기분을 교묘하게 조작한다. 나는 물론이고 <뉴욕 타임즈>도 모두 속았던 것이다. 김대중이 저지른 최대의 범죄는 민주주의를 속인 것이다. 그 가장 전형적인 사례가 ‘광주사건’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 후인 2000년 편자(編者)로서 ‘광주폭동’을 미국의 출판사를 통해 (책으로) 간행했다.
- 사건은 김대중이 일으켰던 자작자연(自作自演,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연출)한 ‘폭동’으로, 대통령이 되는 것을 노리고 폭동을 시도했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김대중이 세속적인 지위와 돈을 중시했으며 부정 축재를 했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나아가 문제는 북한과 관련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국가반역죄에 해당하는 매국 행위였다. 민주화의 호프를 자처하며 노벨평화상을 수중에 넣은 명예욕으로 가득한 사욕의 권화(權化, 화신)였다.
김대중을 구했던 것은 미국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 측의 관계자였다.
- 1980년 가을, 전두환 대통령과 밀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레이건 신임 대통령을 방문하는 최초의 외국 원수로서 전두환 대통령을 초대하는 대신에 김대중을 처형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약속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김대중의 처형을 회피했던 것은 민주화의 기수라고 하는 이미지가 침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전체가 그의 연기(演技)에 기만당했던 것이다.
출처: 일본 <산케이신문>(2015.8.3).
http://www.sankei.com/premium/news/150801/prm1508010018-n7.html
http://www.sankei.com/premium/news/150801/prm1508010018-n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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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부분이 조금 빠져 있던 것을 추가해서 새로 넣었다 이기야.
김대중과 인터뷰를 30번 이상했던 미국 <뉴욕타임즈> 전임 도쿄 지국장이 대놓고 말했다 이기야.
- 김대중은 민주주의를 속였다.
- 김대중은 미국 <뉴욕타임즈>를 속였고, 미국 국민과 미국을 속였다.
- 광주사건은 김대중이 연출했고 북한과 관련이 있었고, 국가반역죄에 해당하며, 매국 행위였다.
용어 해설(1): 일본에서는 광주 5.18을 공식적으로 '광주사건'이라고 지칭한다 이기야.
용어 해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광주폭동이라는 용어를 고집했다 이기야.
추가 설명: 일본은 교도통신(共同通信)이 1960년대에 이미 평양에 지국이 있었다 이기야. 팩트 아니면 싣지 않는다 이기야.
법리 설명: 이것은 법정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이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