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의 국제 선박 검사관 신동식. KBS 제공
 

13일 KBS 1TV에서 방송된 'TV회고록-울림'에는 조선인 신동식 편이 방송돼 잔잔한 감동을 줬다.  

 


신동식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조선산업에 일생을 바친 산증인이다. 유학자 집안의 종손으로 태어난 그는 대입을 앞두고 있던 시기 한국전쟁을 맞아 부산에서 피란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꿈을 갖게 됐다.결국 신동식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조선공학과에 진학했다. 

신동식은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 선박 검사관이기도 하다. 여자고등학교에 수학과 물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취직한 신동식은 자신의 상황을 편지로 써서 코쿰(Kockums) 조선소에 보낸 인연으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스웨덴 코쿰(Kockums) 조선소에 설계 기사로 취직하게 됐다. 하지만 수준 높았던 스웨덴 설계 기사 업무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 했던 신동식.

그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기술 양성소에 들어가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조선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게 됐다. 그리고 신동식은 당시 선박과 조선소 설계 분야에서 최대 규모였던 하디 토빈 컨설팅 회사의 설계 기사로 영국 생활을 시작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드디어 전 세계 조선인들의 꿈의 자리인 로이드 선급 협회(Lloyd's Resgister) 국제 선박 검사관으로 승승장구한다.

1961년 신동식은 로이드 선급 협회 국제선박검사관 자격으로 일본 출장을 갔다. 그곳에서 교민 초대 연회에 참석한 그는 운명의 남자를 만난다.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다. "유럽에서 좋은 공부하고 국제 선박 검사관 되신 경험을 나라 살리는 데 도와주시오." 신동식은 결국 박정희 의장의 제안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조선산업을 일으키는데 헌신한다.

 

김민정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