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는 그날밤도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렸다. 잔뜩 술에 취해서는 기십년동안 가정을 사실상 책임져 온 어머니를 창녀 취급했는데 어머니가 그쯤에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행동을 내가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사건이 벌어진 것은 아버지가 아버지의 술주정을 말리려고 큰방에 들어온 고등학생인 여동생의 옷을 벗기려고 했기 때문이었다.어머니는 순간적으로 동공에서 검은자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티비 장식대옆 화병을 집어 아버지를 내리쳤다. 생각과는 달리 화병은 깨지지 않았고 깨지지 않은 화병으로 어머니는 연신 아버지의 머리를 내리쳤다.
어머니는 두손으로 화병을 잡고 정성껏 몇번이고 내리쳤다. 오랫동안 키운 난초처럼 아버지의 뒷통수에서 뿜어져 나온 선혈은 예쁜 포물선을 그렸다.
아버지는 평소에 어머니를 앞에 두고 말씀이 많은 분이셨지만, 그날 밤 그순간만큼은 어머니 앞에서 아무말씀 없이 피만 흘렸다. 태어나서 처음 본 어머니와 아버지의 풍경이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아버지를 살해하고 아버지의 사체를 큰방 화장실로 옮긴 뒤 아버지의 사체를 토막냈다.
욕조에 누운 아버지는 느릿느릿 분리되어갔다. 작업을 도맡은 어머니의 표정에는 그래서인지 지루함이 보였다. 후회나 체념이나 회한이 아닌 단지 지루함이 보였다. 피가 빠지길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는데 이미자의 노래였는지,
김추자의 노래였는지, 카펜터즈의 노래였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는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응접실 구석에서 아버지의 가방을 가져와 어머니가 말씀하신 쯤에 내려놓고 가방지퍼를 열었다.
어머니는 가방에 아버지의 장딴지부터 차곡차곡 담았다.
재작년 가을 불국사 가족여행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상설 아울렛에서 사준 여행용 캐리어 가방이었다.
아무것도 하지않고 찢어진 교복 블라우스만 매만지던 여동생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는 그렇게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셨다.
아버지가방에 들어가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