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 국가의 배경의 ‘구약성경’ 코드를 좌파는 커녕 보수에도 막혔기에,

-박세일교수와 조갑제기자가 복음화돼야 보수진영이 제 자리를 찾는다.-

 

 

건국계약은 하나님 앞에서 한 결혼계약과 같다. 연애 영화를 보면,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처럼 ‘당신이 나를 잊어버린다 해도,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께요’하는 차원이 드러나야 한다.

 

나는 건국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미국 건국 모토인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란 비석만 보고, 미국 연방제의 원리를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최근 기독교 법사학자가 펴낸 [권리와 자유의 역사]란 책은 구구절절히 ‘계약주의’역사를 반영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019336

 

아마도, 최소한 5년간 인터넷 상에서 조갑제기자가 ‘영웅주의’로 이승만과 박정희를 띄울 때마다, 나는 한결같은 논조로 조갑제기자에 반박해 왔다. 조갑제기자에 반박해온 논조의 모든 바는 ‘권리와 자유의 역사’에 알차게 기록돼 있다. 내 생각이 다르고, 조갑제기자 생각 다르다. 하고 그냥 다양성으로 넘어가고 싶지는 결코 않은 부분이다.

 

이승만의 ‘기독교적 건국관’, 박정희의 ‘근대화 혁명’ 이 두 개를 죽이고 우상숭배로 바꿔 연결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나는 노무현 정부의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아픔에 절규했다. 연평해전 피해자 절규 못지 않다. 공산 마을의 한 풀이만 일 뿐. ‘화해’란 말에 전제된 쌍방의식을 찾을 생각이 없다.

 

한국교회 자체가 무속신앙 키워드를 꽂아서 ‘성공 기복주의’(보수교회), ‘정치적 기복주의’(보수에 복수만 하면 양잿물도 먹겟소 하는 공산마을 경우, 진보교회)로 해석해 왔기 때문에, 말씀을 보존해야 할 것이 이상해져서 이상한 상황을 모르는 것이다.

 

미국 연방제는 시민교육으로 공화 진보 양당을 아우른다.

 

그러나, 보수는 진보 개새끼. 진보는 보수 개새끼. 그러면서 남북은 아우른다고 한다. 국가관 자체가 계약주의가 아니다.

 

이 말은 뭐냐?

 

구약성경 서사구조가 전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의 계약이다. 이것을 못 읽었다는 말이 된다.

 

틈만 나면 진영 담론으로 마을주의로, 우덜 마을 착하고 저쪽 마을 개새끼. 이런 구조로 나아간다. 성경은 그런 논리를 지지한 바 없다. 그런 논리를 끼고 도는 것은 철저하게 동아시아 종교다.

 

보수는 김영삼 때 크게 당했다. 정말로 서구 사회를 닮기 바랬으나, 좌파는 서구 자유주의 담론을 민족해방 공산세력 약진 앞으로 할 때 벌린 체제로 이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수와 진보, 그리고 갖가지 종교에 공정한 사회를 말하려면 구약성경 서사구조의 계약주의를 피해갈 수 없다.

 

조갑제기자의 글에서 국가관 문제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다. 박세일교수는 조갑제기자보다 한수 더 뜬다. 선진통일 건국연합이라고 하며 이승만의 건국이 있는데, 앞에 건국을 무효화하는 언어를 당당히 쓴다. 그런데, 게다가 더 웃기는 것은 성서적 차원으로는 ‘박세일’교수에 안 따른다는 저항권이 형성돼야 맞는데, 박세일교수가 ‘후배들 모이셔’하면 국회가 거의 선배(?)말을 잘 따르는 동문회장이 아직까지는 돼 왔다는 것이다.

 

남북 통일 문제도 동서독 문제보다 훨씬 어렵지만, 국민통합도 서구 사회보다 훨씬 어렵다. 가장 먼저, 한국 국민들에게 자유주의 사회를 토대하는 기본종교가 아니었고, 씨족 사회 조상숭배가 토착종교였다.

 

김대중 스승 함석헌은 씨족 사회 토착숭배를 믿어도 한국인 본성이 잘나서 서구 처럼된다는 믿음이었다. ‘개 구라’로 끝났다.

 

영웅주의의 최종 귀결은 결국은 사회를 지배하는 귀족적 정치계층으로 수렴한다. 70년대 민중신학 탄생기때 김대중 영웅주의(동반하여 생긴 김영삼 영웅주의)는, 결국 지역 씨족 사회의 귀족적 정치계층 앞에 대중을 궁물 위주로 수직적 줄세우기다. 이는 좋게 보면 엘리트 주도권이지만, 나쁘게 보면 북괴식 ‘5호 담당제’ 조직구조로 가는 다리 놓기란 비난이 정당하다. (박원숭의 ‘마을찾기’는 공산당의 ‘꼬뮌’과 연결된다)

 

한국 사회는 마을주의 파벌주의로 마피아짓을 권장하고는, 서구의 기독교 사회의 탈 규제인양 국제사회에 언론플레이하고 국가규제를 해제하여, 시장 사회의 마피아가 백전백승하게 하는 정치 거짓으로 움직여 왔다.

 

이 구조가 거짓 구조임을 보수가 말하려면, 보수 커뮤니티는 무속적 접신가치를 버려야 한다.

 

이승만의 영웅가치냐 아니냐는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씨족 짱이냐 아니냐 여부다. 이런 여부에서는 포퓰리즘을 저항한 국민의 ‘책임과 의무’가 아니라, 정치엘리트에 작두 못 타면 죽음이란 메시지만 전해진다.

 

성경적 가치로 정치인 숭배가 로마시대에 개신교에 엿같은 사회로 수렴하고, 그게 일제 신사참배와 연결된다는 점 뿐만 아니라, 무속적 영웅 숭배의 최종귀결은 자유민주 법치사회가 아니라 엘리트에 무한 밥그릇 설정 밖에 다름 아니다.

 

무속주의로 통일의 기반이란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

 

무속적 카타르시스로 배설감이 통일의 기초라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  남북주민이 서로 간에 공동체를 이루는 계약관계가 아니라, 위정자의 주술로 뿅 하고 탄생될 것을 믿으란 말도 자유민주주의를 믿는 사람에겐 위선의 절정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는 국가 계약에서 마치 동남아 여인들이 농촌 총각을 호구로 알 듯 궁물만 빨고 버리는 참여로서 비춰지는 것을 극복 못하는 게 문제다. 그런 사회는 법치주의가 왜곡된다. 위정자가 법치를 왜곡하는 것보다, 국민의 법치관념이 썩어 문들어지는 게 위기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하는 것은 조갑제기자와 박세일 교수가 복음화(적어도 전 세계 자유민주국가에 동일하고, 법철학 역사에서 서구 자유세계에 존재한 구약성경이 서구사회에 미친성과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가 우선이다. 한국국민은 농촌 사회 정서로서의 '자연법'을 넘어선다는 계약이 있다. 농촌 사회 정서로서 자연법 코드인 영웅주의를 빨면서(콩을 심고), 자유민주 사회가 안 나오노(팥이 나오길 기대하는) 하는 논리가 지겨워 미치겠다.

 

 

 

1줄 요약

 

한국 교회 성장의 장애는, 모범가치가 드물어지고 배설감만 강조되는 사회다.

(힐링이 성경에 어디 나오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