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텍스트를 조갑제기자처럼 읽는 것을 납득할 수 없는 EU
한마디로 말해서, 조갑제기자는 反共담론의 생성사 자체를 모른다.
물론, 모른다란 판단은 ‘인문학’영역의 판단이다. 내 신분을 극단화하여 내 판단을 절대화하는 영역으로서 인문학이 아니다. 적어도 기본적 상식으로 인문학 훈련이 있다면 나올 수 없는 판단을 한다는 측면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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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인도적 지원을 논하는 사람이, 곧 전통적 反共텍스트의 ‘오야’다.
물론, 전통적 반공층이라 하여 늘 옳다고 보지 않는다. 집단 착오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엘리트는 집단착오로부터 계몽할 사명이 있다.
그런데, 전통적 반공층도 집단착오고, 계몽한다면서 딴데를 두들긴다.
해방공간에 북한의 토지개혁 이후에 반공 교회 설교문들을 찾아보자.
키 164CM 이수근이 박정현(키 150CM)옆이냐, 서장훈(207CM)옆이냐에 따라서 평가가 다르듯이, 반공교회 설교문도 배경맥락(context)에 따라 다르다.
1) 냉전시대 맥락에서 보면, 공산당의 악마성을 드러낸 것이다.
2) 민중교회측 맥락에서 보면, 토지개혁 이후에 전 재산을 잃은 이들의 사회주의 진영에서 반공진영으로의 탈주로 본다.
94년 이후에 반공서적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전통적인 반공소설에 사회주의자들과 더불어 하나로 지내고 싶은 욕망을 본다. 전통적 반공실향민 층에서도 존재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통적 반공층이 조갑제기자도 절반쯤 믿어주고 좌파도 절반쯤 믿어주며, 기준이 상실됐다는 것을 지적할 만하다.
그러면, 기준을 찾아주면 된다.
조갑제기자는 ‘아따, 나가 기준인디, 나가 주도하는 프레임을 믿어줘야하는디’ 이런 식의 논거가 아닌가?
기독교적으로는 성경적 가치. 즉, 쌍방이 모두 예수 안에서 회개와 화해를 할 수 있어야 하는 상황을 주도하면 된다.
그리고, 헌법적으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가치다.
그러나, 그 기준 질서 미달의 장년층 안에는 퇴영적인 농촌 공동체 심리로 복귀다.
기준이 없으니 이런 것이다.
조갑제기자는 자기 기준으로 100% 안 믿어주는 보수층을 야속해한다.
나 또한 기준 없이 혼란스러운 반공층이었던 할아버지가 걱정스럽다.
그런데, 더 걱정스러운 것은 조갑제기자다.
기준이 없다는데, 조갑제기자가 기준이라면 믿겠는가?
적어도, 63년 이후 헌법질서로 누적된 가치가 있다.
조갑제씨는 그것을 계승하지 않고, 자기 창안질서가 대체되길 바란다.
그러니, 반공층 장년층이 질서를 잃어버리지.
공산당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은 한 마을 사람들에 대해서 원래 너희들은 안 나쁘잖아 하는 어떤 애정을 전제한다.
사실은 사람이 나쁘고 사악했다.
좌파 진영의 일관된 주장은 공산이론의 좌익혁명기 때 작동의 결여다.
그러면 그 혁명정서를 뭐가 만들었느냐?
이익이면 이웃도 다 죽여 버리는 미개 근성?
우리는 국민들에게 보편타당하게
조닷컴 보다 훨씬 권위있는 매개체를원한다.
물론, 모든 종교인들이 의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국제시장 윤덕수 때는 그게 있었다.
지금은 그게 없다.
의도적으로 안돼요돼요돼요 작전 처럼 파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