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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는 글은 내가 한중수교당시 대만에서 8일간 갖혀 있었던 썰이다....
20년 지난 오래전 일이라 인증을 못해서 앙망한다 ㅁㅈㅎ 달게 받는다.
배타는 동안 벼라별 일을 겪는게 마도로스의 일상이다.
주작아니니 절대 의심하려 들지않는 바른생활 일게이가 되길 바란다.
짤은 그때 타던배 엔진실에서 찍은거다.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은 양국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 했다.
이때문에 대만은 단교해버렸고 대만에 머물던 한인들은 모두 귀국해야 했었다.
이때 난 부산 세진선박 소속 제너럴 카고선 드라곤 프로스 퍼리티호에 3등 기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하필 이때 우리밴 대만의 기륭항에서 화물을 적하하고 있을때 였는데 내가 승선계약 만료되어
귀국을 해야 했었다.
난 귀국 준비를 마치고 에이전트가 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선장이 잠깐 애기좀 하잔다.
난 속으로 귀국연기가된게 아닌가 지레 걱정부터 했다.
선장님 왈
한국하고 중공이 수교를 했단다.
그래서 지금 대만에서 한국을 비난하는 데모가 일어나고 한인 상가가 테러를 받고있고
대한항공 지점도 모두 철수되어 내가 귀국할 비행기가 없다는 거다..
수교 3일전에 이미 후임 3기사가 승선한 터라 난 자리를 내줘야 하는데
이제 한중 수교 바람에 국제 미아가 될지경에 이른거다.
선장님은 일단 선박 업무 대행사인 에이젼트에게 협의를 했지만 꼭지가 돌대로 돌아버린 대만인들이라
같은 대만인이었던 에이젼트가 제대로된 귀국수속을 해줄리 만무하다.
좌우간 그때 티비에서도 연신 한국을 비난하는 보도가 터져나오고 한인들은 모두 대만을
부랴 부랴 빠져 나와야 했었다.
드물게 한인이 길에서 폭행을 당하는 일도 보도에 나왔다.
그래서 선장은 나보고 귀국을 연기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미 승선계약 종료라 배에서 하선 하는순간 급여는 지급되지 않는다.
가장 결정적인건 그때 사귀고있던 여자가 기다리는데 지쳤다고 고무신 바꿔찰 기세였다.
죽도록 사랑하는 젊은 청춘 남녀가 1년간 떨어져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래서 난 한시라도 빨리 귀국해서 그녀를 달래줘야만 했다.
그런데 다음 기항지가 하필 한달넘게 항해하고 가야하는 사우스 아프리카의 케이프 타운이다.
그당시 사우스아프리카도 우리나라와 공식 수교가 안됐던 나라라서 계약 종료하고 일반인 신분의
나는 그나라에 들어갈수도 없는 지경이 된거다.
선장은 일단 에이전트가 올때까지 기다려 보라고 한다.
그래도 다행인게 내가 타는배의 국적이 파나마였고 선주가 일본 도쿄마린이었다.
전 선원들은 모두 상륙금지령이 선장에 의해 떨어졌고 대만인 들에의한 혹시 모를 린치가 있
지않을까 노심 초사 했다.
그날밤 불안한 마음으로 잠도 못자고 에이젼트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에이전트가 왔다.
에이젼트는 내가 머물 안전한 숙소를 구해놨고 귀국 비행기표를 구할때 까지 그곳에서 기다려야한다고 했다.
일단 내가 한국인이지만 선원 비자여서 입출국 관리들도 함부로 못하니까 안심하라고 했다.
다만 기다리는동안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고 식사는 우선 에이젼트가 5일분 정도를 숙소에 비치해 준단다.
그날 밤 나는 에이젼트 차를 타고 두시간동안 밤길을달린후 어느한적한 변두리의 모텔에 들어갔다.
에이전트는 절대 모텔 직원과 얼굴을 대하지말고 밖에도 나오지 말라고 했다.
최대한 빨리 귀국행 비행기표를 구해준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돌아갔다.
이렇게 난 모텔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감방 아닌 감방 생활을 해야 했다.
티비는 연일 한중수교 보도만 나오고 길에서 벌어지는 비난 데모가 밤낮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8일이 지났을까 기다리던 에이전트가 비행기표를 들고 모텔에 왔다.
미국 델타 항공사 티켓으로 타이페이 에서 일본 센다이로 가는 비행기표였다.
그후엔 내가 센다이서 표를 구하란다.
일단 나는 그곳을 빠져나오는게 급선무라 할수없이 에이전트를 따라서 타이페이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면서 길거리엔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플랭카드가 도처에 걸려있고 넓은 광장엔
시위 꾼들이 모여있었다.
난 천만다행으로 그나마 맘씨 좋은 대만인 에이젼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8일 만에 대만을 겨우 빠져 나왔다.
요약
1. 1992년 8월 24 일 한중수교 당시 나는 외항선 타면서 대만 기륭항에 있었다.
2. 하필 그날 수교날 즈음 승선계약 만료되고 후임 3등 기관사가 3일전에 승선한 상태였다.
3. 한국정부와 한국인들에대한 대만 정부와 인들의 거쎄 반발과 비난으로 모든 한인 상인들과
무역회사, 항공사 직원들이 모두 한국으로 가버려 나는 귀국길이 막혔고 다른 비행기표를 구하기 위해 기륭시 에서 두시간 떨어진
여관방에서8일간 꼼짝 못하고 갖혀 지내야 했다.
조선족 아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