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애초에 출신성분을 세탁하고 족보를 위조한 노비후손들끼리 모여있다 보니 사교문화도 희박하며 부모자식간 절연이 빈번하여 친척끼리도 통수치는데다 고향을 떠나 독거해서 가족의 부재란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결핍을 친구라는 존재를 통해 꿩 대신 닭의 개념으로 충족시키려는 게 조선인이다 보니 대인관계도 위선적이고 피상적이며 직장동료와 동창-동기/선·후배끼리도 막상 친교와 우애를 나누지 못 해 누군가를 초대해도 참석한다는 확신이 없기에 일본과 다르게 일단 초대장을 남발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하객의 숫자가 많아지는 기현상이 발생하곤 하는 거임.

 

사내들의 입장에서 스몰웨딩은 확실히 학폭피해자와 관심병사들이 내세우던 것이긴 하지만 요즘은 찐따들이 결혼 자체를 아예 안/못 하고 어차피 부전자전에 모전여전이긴 하지만 사실 혼인은 집안간의 결합이라 당사자인 후대 개인의 능력보다도 선대들의 인맥과 그 집안의 수준이 관건이며 계집들의 경우 안 그래도 시골에서 신분상승을 꿈꾸면서 상경한 촌년들이 로판 열심히 보고 자신을 공작부인과 백작부인 정도로 표상하거나 마찬가지로 궁정문화와 귀족들을 동경하면서 배우자로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곤 하는데 실제로 막대한 패권을 가졌던 대공들과 북부대공같은 기믹의 현신인 변경백들의 관혼상제에 참석하는 인원은 50명 정도에 불과했고 이런 선제후들 중에서 선출되며 서방에서 암묵적으로 위계가 가장 높았던 신성로마제국-오스트리아 황제라도 초대할 수 있는 인원은 단일공간에 200명 이하로 제한될 수 밖에 없었던 게 에르미타주, 페테르고프, 쇤부른, 호프부르크, 상수시, 마드리드 왕궁, 알 에스코리알, 버킹엄, 윈저캐슬 어디를 가도 그 부지와 정원이 드넓은 것이고 절대왕정을 구가하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루이 16세가 단두대에 서게 만들었던 베르사유 거울의 방을 제외하곤 앙필라드 구조의 특성상 방의 갯수가 여럿인 거지 수용인원은 던바의 수(Dunbar's number)처럼 결국 150~200명 이하이기에 요즘 백악관도 동관을 허물어 거대한 연회장을 따로 만들려고 하는 예외적인 행보가 도금시대의 강도귀족같은 졸부근성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건데 유럽의 정통성이나 미국의 부를 갖추지도 못 한 조선인들은 노비후손답게 이러한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 하고 출신성분을 드러내는 자승자박을 하고 있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