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중화인민공화국)은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북한의 남침 능력을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정예 군사 병력과 무기(약 5만~7만 명 규모)를 지원했습니다. 
당시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이 제공한 핵심 지원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정예 병력 인도 (가장 결정적 지원)

중국은 자국 내 국공내전에서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와 싸우며 실전 경험을 쌓은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조선족 사단들을 대거 북한군으로 편입시켜 주었습니다. 이들은 전쟁 초기 북한군 공격력의 핵심 축을 담당했습니다. 

  • 인민해방군 제166사단 ➔ 조선인민군 제6사단: 1949년 7월 입국하여 방호산의 지휘 아래 편입되었습니다 (약 1만 800명). 
  • 인민해방군 제164사단 ➔ 조선인민군 제5사단: 1949년 8월 입국하여 김창덕의 지휘 아래 편입되었습니다 (약 1만 명). 
  • 인민해방군 중남군구 독립 제15사 ➔ 조선인민군 제12사단: 1950년 3~5월경 입국하여 전우의 지휘 아래 편입되었습니다 (약 1만 명). 
  • 기타 병력: 그 외에도 만주 지역의 독립 연대나 철도병 부대 등에서 복무하던 조선족 군인들이 대거 북한으로 입국했습니다. 

    이 지원을 통해 북한군은 최소 5만 명 이상의 베테랑 정예 전투 병력을 단숨에 확보하게 되었으며, 이는 6.25 전쟁 초기 북한군 전체 기습 공격 사단 병력의 약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였습니다. 


    2. 개인 화기 및 군사 장비 지원

    중국은 이 병력들을 북한으로 보낼 때 몸만 보낸 것이 아니라, 이들이 국공내전 당시 사용하던 개인 화기와 탄약, 군사 장비를 그대로 소지한 채 입국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이 덕분에 북한은 별도의 무기 무장 과정 없이 곧바로 즉시 투입 가능한 정예 사단들을 전방에 배치할 수 있었습니다. 


    3. 미군 참전 시 자동 개입 확약 (전략적 배후 약속)

    1950년 5월, 김일성이 베이징을 방문해 마오쩌둥을 만났을 때 마오쩌둥은 남침 계획을 최종 승인·독려했습니다. 이때 스탈린의 방침(미군 참전 시 소련은 직접 싸울 수 없으니 중국이 도울 것)에 동의하며, "만약 미국이 전쟁에 개입해 올 경우, 중국이 곧바로 군대를 파병해 북한을 돕겠다"는 전략적 확약을 해주었습니다. 이 약속은 김일성이 전면 남침을 감행하는 데 든든한 외교·군사적 배후가 되었습니다. 

     

     

     

     

     

     

    개새끼들임

    이래놓고 미국이 침략했다고 피해자 코스프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