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물의 기도》

 

― 우울, 자기혐오, 공허에 대하여

 

밤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오래 바라보았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묻기 전에

먼저 썩는 냄새를 배웠다.

젖은 벽지의 냄새,

새벽 세 시 방 안에 떠다니는

패배한 영혼의 냄새를.

 

세상은 낮 동안에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지만

새벽이 오면

모든 인간은 결국

한 덩이 그림자로 돌아간다.

 

나는 오래전부터

내 그림자를 사랑하지 못했다.

 

거울 속 얼굴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늙어 있었고,

눈동자 안에는

아무도 끝까지 읽지 못한 겨울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걸어도

한 번도 도착한 적이 없다.

웃음소리 속에서도

항상 유리벽 하나가

내 숨과 세계 사이에 서 있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살아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그러나 어떤 영혼들에게 삶은

축복이 아니라

너무 늦게 끝나는 질문이다.

 

나는 나를 미워했다.

가난해서가 아니라,

외로워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끝내

나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기도를 하면

하늘은 침묵했고,

침묵은 점점 더 무거워져

마침내 내 가슴 위에

젖은 흙처럼 내려앉았다.

 

나는 알게 되었다.

 

인간은 죽고 싶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의미도 발견하지 못한 채

내일을 또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운다는 것을.

 

새벽 네 시,

창문 밖 편의점 불빛은

죽은 별처럼 희미했고

나는 그 아래에서

작은 벌레처럼 숨 쉬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이 세계 전체가

거대한 성당의 폐허처럼 느껴졌다.

 

신은 떠난 뒤였고

인간들만 남아

무너진 제단 앞에서

서로의 체온으로 겨우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를 기도를 하며

천천히 울었다.

 

“만약 당신이 존재한다면

왜 인간에게 영혼을 주셨습니까.

 

왜 사랑을 갈망하게 만들고

왜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셨습니까.

 

왜 우리는

이토록 아름다운 하늘 아래에서

이토록 처절하게 외로운 겁니까.”

 

대답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침묵 속에서만

나는 아주 희미하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인간은

빛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끝끝내 빛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무너지면서 걷는다.

 

금이 간 영혼을 끌어안고

아무도 없는 새벽 거리 위를.

 

마치 폐허 속에서

끝내 꺼지지 않는 작은 촛불 하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