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군불떼기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한물 갔고 ‘착취적 의회’~‘착취적 지방자치’의 시대가 왔다는 고백인 이유
‘제왕적 대통령제’란 이름하에 호남귀족연합의 영남 혐오로 표현되는 지금의 이 말은 단순하지 않다. 일상표현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표현되지만, 대런 애쓰모글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표현되는 착취적 제도로서 남미의 관료적 자본주의를 둘러싸고, ‘한상진 편저’, [제3세계 정치체제와 관료적 권위주의, 한울 1984.로 나타난다. 적어도 80년대 후반 및 90년대 초중반은 상당수의 깨인 국민이 이러한 발언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84년 한상진 작업과 1987년 촛불두목 백낙청 사단의 사회구성체논쟁은 긴밀히 이어진다. 미국 공화당 세계 패권기간과 군사정부에 깔린 영남동학의 밀월기간이 겹쳤지만, 그 당시에는 미국의 후원하에 일반인의 참여를 완강하게 배제하는 그런 관료적 권위주의라고 맹 비판됐다.
그리고, “5.18 헌법전문”으로 단독 추진하려다가, “부마항쟁”을 끼워넣는데, 어떻게 보더라도 성격은 같다. 유신체제의 관료적 권위주의로 민중배제 영역 대신에, 히틀러 파시즘 혹은 스탈린주의나 중국공산당 같은 당파중심의 권력집중담론으로 민중소외(은따)하려는 전략을 취하려는 것이다.
관료적 권위주의라고 민정당을 비판할 때, 영남 왕권제 유교로 왕에 줄 선 이들의 宗家를 위한 특권체제로 나타난다.
여기서, 경상도식 특권체제는 안되는데, 전라도식 특권체제는 된다는 것이 5.18 헌법전문론과 부마항쟁의 연합된 의미로서, 민중연합의 전라도식 당파권력집중과 그에 기반한 일반인 배제구조는 된다는 가치관을 깔고 있다. 제후귀족연합의 分家로 세워지는 특권체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5.16 헌법전문론과 5.18+부마항쟁 헌법전문론은 사실은 법치주의 세계관이 아니고, 조선왕조 당쟁 관습에 있다.
《AI 개요
조선 시대 권력을 쥔 붕당이 관(官, 조정 또는 지방 관청)에 자신의 색깔을 넣으려 했던 이유는 정치적 주도권 강화, 이념의 정당성 확보, 그리고 인적 네트워크 구성을 통한 장기 집권을 위해서였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치적 주도권 강화 및 독점: 특정 붕당이 관직을 장악하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반영할 수 있습니다. 붕당은 핵심 요직을 자신들의 사람들로 채워(인사권 장악), 조정의 정책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습니다 [1].
이념적 정당성 확보 및 명분론: 조선은 유교적 명분론이 중요한 사회였습니다. 권력을 쥔 붕당은 자신들의 학문적 입장(예: 서인의 성리학적 교리, 남인의 예학 등)을 '정통'으로 삼고, 이를 정책과 교육에 반영하여 자신들의 지배 구조를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1].
장기 집권 및 기반 공고화: 붕당은 중앙뿐만 아니라 지방의 수령이나 향청에도 자신의 세력을 배치하여 지방 통제력을 확보했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붕당의 기반을 탄탄히 하고, 반대파의 재기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1].
결국, 붕당에게 관직은 단순한 공무 수행의 자리가 아니라, 세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핵심 기반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색깔을 입히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광주민중항쟁이 충분히 대접받는다. 부마항쟁도 대접받는다. 이를 한참 초과하여, 이 색깔을 가진 이들의 배타적 우위로서 일반인 범접 불가를 의도하려는 저의인 것이다.
관료적 권위주의로서 일반인 배제 양식은 물러가라.
스탈린 주의 권력 양식에서 유대인 배제
히틀러 파시즘 권력양식에서 유대인 배제
북한공산당 권력 양식에서 조만식 노선 배제
그리고, 전라도 노론 양반들에 오랫동안 상식이었던 노론독재 지배구조에서 일반 백성 배제의 논리로 가자는 것이다.
(사족)
20대 대학생이 윤어게인을 편드는 것은, 조갑제 사단처럼 사투리만 경상도이고 전라도 종족주의 가치관에 빠지는 이들로서 대구경북 혐오증으로서 비판하는 차원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안타까웠다.
대한민국은 전라도 부족국가도 경상도 부족국가도 아니라, 법치주의 중심의 근대국민국가다. 비록, 윤석열에 내란죄에 해당될 잘못이 없다고 보았으나(그렇게 ‘내란죄’로 보는 것은 전라도 귀족연합의 지배권력 무너지면 안된다는 선입견 전제), 기본적으로 서울법대 나온 집권자가 조선왕조식 감정으로 퇴보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⓵ 실제로 왕권제유교가 권위주의로 존재했던 장면 →⓶ 이를 깬 이들의 훈장질, 갑질 → ⓷ 도로 과거로 돌아가기라면, 지금의 갑질은 더욱 공고해진다.
(그록 ai. 한상진 편저, [제3세계 정치체제와 관료적 권위주의]에 대한 결과물 중)
구체적 비판 포인트 (당시 운동권·야당 논리 요약)
정치적: “민주화는 허울뿐. 간선제 대통령, 3당 합당 시도, 야당 탄압 → BA 국가의 ‘불투명한 지배체제’(한상진 책 135쪽 용어 직접 인용).”
경제적: “관료적 자본주의 = 국가가 재벌을 키우고 노동자를 억압하는 체제. EPB·재무부 기술관료가 실권, 재벌은 특혜 독점 → Acemoglu가 나중에 말한 ‘추출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s)’와 거의 동일한 구조.”
사회적: 성장으로 중산층(화이트칼라·대학생)이 대거 등장했으나, 이들이 오히려 ‘중민(中民)’ (한상진 후속 이론)으로 변혁주체가 됨. “BA는 자신의 무덤을 판다” → 1987년 6월 항쟁의 이론적 근거.
국제적: “제3세계 종속 발전의 전형. 미국·일본 자본과 연계된 신식민주의.”
김대중 측은 특히 “BA는 성장 성공으로 민주화가 가능해진 유일한 권위주의”라는 한상진식 해석을 좋아했습니다. (실패한 라틴아메리카와 달리 한국은 성공했기에 중산층이 더 강력히 들고 일어선다는 논리 → “경제성장 = 민주화의 동력” 프레임으로 전환.)
한상진의 관료적 자본주의론으로 나타나는 미국의 후원을 받는 《대구경북 왕권제 유교》에 토대된 왕과 결속된 기득권 집단에서,....
이번 개헌 담론에서 귀족끼리 어깨동무하고 연합한 장면에서 여실히 나타나지만, 합종연횡으로 진시황의 연횡을 깨는 합종에 민족해방통일전선을 쓰는 《그 당파중심의 기득권 집단》으로 바뀐 것을,
개헌담론으로 조선왕조 색깔로 표현하려는 것이라고 보인다.
5.16 헌법 전문 시대에, 사실은 그때는 사회가 무엇이고 법치가 무엇인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권력이 어디냐만 중요했다.
또 헌법전문 박는다? 지금 5.18 헌법전문세력과 부마항쟁 헌법전문세력은, 세계 대공황에서도 이익을 유지하는 기득권 권력을 유지하려는 발상으로 보인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깔린 착취적 구조(대런 애쓰모글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와 한상진 편저, [제3세계 정치체제와 관료적 자본주의] 연결점가 아니라, 의회와 지방자치의 귀족연합 당파권력에 깔린 착취적 구조의 연결점으로 교체일 뿐이라는 고백이며, 한국 사회 이면정서는 변화보다는 지속이 크다는 게 불편한 진실이 아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