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의 진짜 전선이 ‘지역’이 되는 슬픈 이유-

지금 지배층 전략은 이렇다. 대학가에 퍼뜨리는 내용과 조중동 등 매스미디어에서 하는 내용이 다르다. 필자는 늘 충분한 사실 지평 위에 있는데, 대학가에서 30년간 퍼뜨린 내용 위에 있다.
개인이냐 공동체냐, 이 전선은 한국정치에 없다. 트럼프 지지층의 경제유튜브에서 사상전 교육하는 내용보면서, 이런 사상전 전선이 없는데 하는 생각이 지배했다. 있다면 조중동 매스미디어의 일반인 중심이 명분적 허구일 것이다.
개인... 이란 말에는 복음주의 기독교가 곧 경제학이면서, 정치이고, 법치이고, 사회와 윤리까지 완성하는 세속사회까지 지배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한국의 복음주의 기독교가 정말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아니다. 공동체... 소셜리즘이란 말에는 진보 기독교가 곧 경제 정치 법치 사회 윤리까지 완성하는 세속사회 지배상황을 의미한다.
필자가 진보기독교를 한국 맥락에서 성서적 진정성이라면 부정하지 않는다는 말은, 한국에서 사상전 전선에서 미국 민주당을 속이는 더불어 민주당의 속임수가 아니라면 “거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대중들에 전파되려면, 일단 전파성이 높아야 한다. 보수기독교보다 월등히 더 많은 지식이 요구된다. 보수기독교도 세상권력에서 소외인데, 진보기독교는 말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공동체 관념은 원불교(사탄교)등 전라도 동학신앙이라고 원불교 백낙청은 자신의 분단체제론 이론으로 설명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것은 이재명 민주당에서 이재명 후원회장이 백낙청이고, 백낙청의 이론이 그러면 믿어야 한다. 미국 민주당에 촘스키의 사상 지배력은 어마어마하다. 미국 정치에서 촘스키 가라사대!! 하는 모든 내용에 대해서, 미국 공화당이 전부 언급조차 안하는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진다고 보면 된다.
공산주의 공동체 관념의 뿌리는 서양영어권 진보에는 미국 보수우파를 영혼탈곡기로 노이로제 만들게 하지만, 어쨌든 그 이면의 원형에는 ‘교회’가 있다. 미국 트럼프 지지층은 기독교 사민주의를 완강하게 부정하나, 한국인 기준으로 북유럽 영어권 사람들과 소통 때에 외통수로 빠지는 문제가 있다. 한국맥락을 적용하는 이유는 이런 이유다. 그러나, 한국의 원불교(사탄교) 공산주의 공동체 이면에는 중국식 농촌 마을이 있다. 한국 맥락에서 파악된 원리와, 트럼프의 “차이나=코뮤니즘” 및 <미중패권전쟁>의 자유진영 언어에 맞추는 논리 조립이 한국인에겐 미국 사상지형의 직수입과 그 언어를 기계적 반복보다 훨씬 낫다고 본다.
유교붕당→ 동학 민회 →조선공산당→남로당
이렇게 역사를 서술한다.
그리고, 한국정치를 휘감는 중심 대립은, 1922-1945년에 소련돈 먹었으니까 한반도가 모두 소련이어야 한다면서, 노론독재 300년부터 조선공산당 까지 이어지는 정서를 구축하여, 6.25전쟁 때 김일성 인민군 남진을 수수방관을 넘어서 인민군 부역까지 하는 데에 이르른 호남 동학과, 300년 노론독재에서 소외된 영남 동학 양반들이 이승만 줄에 서서 미군정 정치싸움의 승리와 6.25 전쟁 참여에 이르는 정서가 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란 80년대 유명한 좌경서적의 메시지는 매우 간단한데, 농촌 마다 조선공산당 지역당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원순의 도시농부 사업은 그 구조를 수도권까지 확산하는 것이다. 오세훈이 이 논리를 그대로 계승했다. 그러나, 보수유권자는 오세훈을 찍어야 한다. 어느 쪽이나 민주당 유리한데, 민주당에 덜 유리하게 하는 오세훈을 찍어야 하는게 슬프다.
동학의 모든 목적은 자기 파벌의 정치인을 관직에 꽂는 것이다. 이는 매우 살벌한 정치싸움을 유발한다. 기독교인은 군사정권 시절에서도 이런 싸움에서 거리를 두는 것이 길이라고 했고, 알면 알수록 이런 파시스트간의 대결(호남 동학은 영남만 파시즘이라고 했다. 실제로 호남 동학 시각으로 그렇게 보이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호남 동학은 영남보다 2-3배 더 강한 파시즘이다. 미국 민주당은 언제나 호남의 말만 맹신하여 한국정치를 절반이하만 본다)이 지겨워진다. 지금 한국정치의 구조를 보면, 6.25 전쟁 때 어떻게 동족상잔 전쟁이 있었는지 그 원형 구조가 그대로 보이지 싶다.
유신체제는 이를 막기 위해서 강한 독재체제를 주장했다. 독재 없이 이 구조를 깨는 것은, 사실상 <경제위기와 코어 귀족의 책임 추궁 소송>뿐이지 싶다.
영국 노동당이 영어권 진보를 미국 보수가 뭐라고 해도 폄하 할 수 없는 의미가 있다. 영국 노동당 경제유튜버가 노동당 중심을 마구 비판하는데, 신자유주의를 수용한다는 이야기다. 순수한 사민주의 기준으로 돈 투자하는 사람을 가스라이팅한다면, 그러면 투자가 얼어붙는다. 귀족 일수록 정부가 자기를 호구 만들 때 투자 안하려고 할 것이다. 반면에, 한국의 정치권은 사고방식이 다르다. 사회를 둘러싼 합리적 선택으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자기들의 권력 안보를 위하여 최대치의 문제다.
이재명 민주당의 트럼프 미국에 대한 잣대는 한미동맹, 그런게 아니라 전라도 동학의 권력 안보를 위해서다. 그리고, 불안해서 러시아에 손짓하고, 중국에도 자기 봐달라고 한다. 한국의 법치주의가 걸레가 됨은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국민의 법인식이 무너지고 국가공동체 관념이 무너지는 것은 무관심하다. 철저하게, “원불교”(사탄교)중심의 전라도 동학귀족들의 감투권력 위주다.
한국의 진짜 문제는 반대편도 전라도 동학 공산파 만큼은 아니지만, 사쿠라 조갑제기자의 앞뒤 안가리는 보수진영 사상혼란작전이 먹혀서,.... 상당히 정신 줄 놨다는 것에 있다.
한국경제 및 세계경제는
부채경제발 과잉 생산시설이, 부채가 임계점 넘어서서 늘지 않고, 기존의 부채는 갚기 포기하여 꾸준히 금융기관으로 화폐가 퇴장하는 전형적인 불경기와 불황에 있다.
반대측의 국힘도 기독교정치인이라는 분자체도 속생각은 동학이다. 동학을 통한 자릿싸움이다.
한국정치의 지역싸움이라는 것은 아직도 씨족제 탯줄이 안 잘렸다. 무수한 이 사회의 실력자는 나올 생각을 안하는(파시스트 간의 대결에 어느 안전에 앞에 나오나! 어느 안전에!!) 상황이란 것이다. 유신체제에서 국가권위주의 앞에 안 나섬과 본질은 같은데(그때도 지금 지배층 아니겠나?), 형태는 조금 다르다.
챗 지피티가 원불교 백낙청에 대한 반대시각을 전혀 허락안하고, 그동안 나와 있는 정보만을 맹신하고, 정보가 안 나옴은 모두 합의와 동의한 거 아니냐는 잣대를 보였을 때 진심으로 빡쳤다. 챗 지피티의 한국관점이 곧 그동안 미국 민주당의 착각이 아닌가? 소설가 한강을 노벨문학상 심어주는 영어권 진보의 착각이 아닌가?
어느 한쪽에 심정적 동화돼서 다른쪽을 비판하는 것은, 반대측 권력 때에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오히려, 지금은 이 정치전쟁의 몰두자들이 이제는 경제위기의 근원적 진앙지로 나타나는 사태가 가시권이다.
최서해의 탈출기는 개벽지에 나왔다.
조선공산당 사건과 연결된 문학조직이 카프다.
백낙청은 카프의 후신인 남로당 문학건설본부를 계승했다고, 백낙청 사단의 문학평론가가 주장한다.
동학공산주의라는 말이다.
한국에서 괜찮은 반공서적이 조갑제 박정희 책장사가 안 쓰여지는 이유는, 조갑제의 ‘역사의 바퀴벌레’(보수원로란 작자가 북한공산당 보수증오 감성)인 점에서 나타난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