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유신체제는 당시 사회에 대한 <진단서>는 맞고 독재가 답이라고 하는 <처방전>이 틀렸다고 평가했다. 각 지역마다 씨족중심의 서로 다른 가치관일 경우, 시장경제는 돌아가지 못한다. 진시황식 권위주의라도 덮어 씌워서 국가를 봉건적 권위주의로나마 소통을 이루어야 겠다는 처방전은 옳지 않고, 씨족주의로 갈기갈기 찢긴 국가란 분석은 정확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은 처방전까지도 정답으로 수정을 지향했다. 서양법의 구현을 제대로 하여 국민국가의 통합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87년 이후에 4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지나놓고 보니, <새빨간 거짓말>이 됐다.
법치주의 문제가 왜 ‘경제위기’의 근원이 되나? 시장경제는 생산자-소비자-판매자 간의 상호 계약관계로 돌아간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사회는 원불교(사탄교) 같은 동학신앙으로, 씨족마다 종족주의로 다 돌아가 버렸다. 시장경제는 계약자유원칙이다. 상호간의 약속을 지킨다는 신뢰속에 돌아간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씨족주의로 다 돌아가버렸음은, 약속을 지킨다는 신뢰의 전방위적 붕괴를 의미한다.
김대중 민주당 지지자는 일찌감치 ‘민주헌정질서’란 이름의 전라도식 붕당주의를 표현했다. 그리고, 사쿠라 조갑제 기자 사이트의 대부분의 글을 보라. ‘전라도식 중화주의 우주중심론’이 뚜렷하다. 민주정의당 법치가 ‘전두환’이 유교의리이고 진리였던 것이, 김대중 김영삼 연합시대는 동학집단의 부족연합의 권력축이 유교의리이며 진리로 나타난다. 이 상태에서 일당독재 권력과 연결된 귀족이 있는 영역에서는 다양한 시장왜곡이 나타난다. 유신체제는 오직 청와대 연결만 왜곡이 있었다.
그러면, 김대중 김영삼 연합의 지배층은 왜 어떻게 국민에 법, 규칙, 규범으로 수렴하는 교육을 의도적으로 안했을까? 노론 양반의 탕평 대동 신화를 종교적 반열까지 믿은 듯 하다. 대구경북 동학양반들이 왕권제 유교를 믿는 것과 비교가 된다. 그분들끼리의 종족주의 족보사고는 정당하지만, 법치국가 국민공동체 기준으로는 매우 황당해보인다. 김대중 김영삼 연합시대의 지배어는 ‘중도 중용 조화 균형 상생 화해 평화’로 모두 호남동학본부 기준의 ‘종족=대동’의 유교의리론으로 연결된다. 법치교육을 안한 이유는, 전라도사람들에게는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엿장수 맘대로 휘어져도, 중앙에서 전라도식 유교를 꿴 사대부는 탕평의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세도가문에 쫓기며 끝내 나라를 망하게 했던 고종황제가, 고종 기준으로는 탕평 대동 아니었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씨족이 다른 사람들에겐 <투명인간>취급함을 전제로 했다.
필자는 비운동권이다. 철저하게 운동권이 아니다. 어쩌면 군사정권 내내 전자오락과 만화를 즐겨보는 비정치적 청소년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승만 박정희’를 둘러싼 사쿠라 조갑제기자의 공산혁명 혁명영웅 이미지 덧 씌우기를 완강하게 부정한다. 또, 대구경북에 조갑제기자에 계속 속아넘어가는 집단처럼, 영남 왕권제 유교를 그대로 영남식 무속신앙 영웅주의로 가는 것을 부정한다. 1987년 이후에 90년대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나온 논문으로, 서양법주의를 제대로 구현하겠다는 약속위에서 필자의 논리를 전개한다.
세상에 말이 되나? 유신체제를 극복했다고 ‘민주화신화’ 논하고, 이면으로는 돌아가버리는게 말이 되나?
뿐만 아니다. 민족복음화운동에서 ‘복음통일’로 변절은 민족복음화운동이 ‘가짜 교회’로 지적했던 남로당기독교식으로의 변질이다. 성경본문 읽어본 사람들은 알지만, <약속 파기>를 금기시하고 하나님과 언약한 약속은 계속 이어짐을 강조한다. 신약성경에서 이 논리가 안 보이는 분들은 구약성경 읽어보라. 다윗의 이야기 읽어보라.
노론은 원래 ‘권력중심’의 씨족종교다. 그리고, 조선 중화주의로 양반들은 서너너덧명만 믿더라도, 자기 맘대로 논리를 만들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로 신앙을 통일해도, 장로교는 수백개의 교단으로 나뉘었다는 자조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자조감’을 넘어서서 ‘자포자기’로 간다. 주도자는 ‘자포자기’이면서 세상에는 다 지키는 척 해온 것이다.
이석연 변호사는 헌법 연구관 1호였다고 한다. 그런데, 후천개벽교리로 낡은 것을 없애자는 정통 중국식 농민윤리로 법치를 본다. 그렇게 보는 것 자체가 서양법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석연변호사처럼 보면, 전라도 승자 부족의 종족 패권을 하며 매우 불공정한 사회를 만들면서, 서양법을 구현한다고 구라를 치는 상황이 된다.
유신체제 정치재판과 속내는 비슷하게 김대중체제는 전라도 중화사상 종족원리로 정치재판이 벌어진다. 유신시대는 1인만 법 외인데, 김대중체제는 1부족의 귀족 집단이 법 외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법리를 다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논문도 나온 학교에서 선배라는 판검사들이 법리대로 안 본다.
부동산 가격의 근거가 없다. 필자는 부동산 시장 현장에서 ‘집주인의 담합’하는 경매식 호가가 그대로 사회에서 기준가격이 되는 현상을 체험했다. 특히, 부채만 최대치로 늘리면 저절로 모든 게 잘된다는 자유경제원 김정호 교수가 확장한 김대중의 대중참여경제학 논리는 허구가 됐다. 시장경제는 자기 책임 원칙이다. 부동산은 거액의 투자다. 지배자들의 자본시장 확장을 위해서, 일반국민의 <투자실수>만을 집요하게 반복한다.
윤석열씨 내란죄 재판에서 필자는 영남 사람처럼 왕권제 유교로, 윤어게인 이렇게 보지 않는다. 윤석열씨의 유튜브 구독신청했지만 1분 1초도 윤석열씨 유튜브를 보지 않았다. 지금 전라도 유교나 전라도 씨족신앙에서는 다 말이 된다. 서양법에서는 말이 안된다.
경제는 법치 속에서 계약이 이루어진다. 정치는 법치를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가 아무것도 안한다. 법의 수호를 평민과 미국에 떠넘긴 모양새다. 금융시장이 흔들려서, 관료의 방어선을 넘어서게 되는 순간 다 드러나는 문제가 있다.
유신체제 경제학은 결국은 진시황식 권위주의 속에 붙은 문사였다. 그리고, 김대중경제학은 한나라 유교로서 유학의 본령에 붙어있는 차원으로 여기에 붙은 문사의 것이다. 김대중 지지자들이 유신경제학에 자유민주 시장경제 맞나? 그 이상으로 현타들린 한국 국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꼭, 경제학이 자유진영의 기독교신앙이 깔린 경제학원론대로 돼야 한다는 고집을 하는게 아니라, 지금 김대중 민주당이 민정당 유교자본주의의 ‘유교’를 비판한 것처럼, 지금의 김대중대중참여경제론에 깔린 동학신앙이 비판대상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건국전쟁’이 경제위기가 왜 찾아오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시장경제와 연결된 법치주의를 아예 포기하고, 고대삼국 부족국가 민족신화를 소환한다. 경제도 이런 신화 논리다. 모든 국민이 어벙해진다. 민주화로 민주헌법 쟁취국민운동 내놓고, 각자의 부족주의로 돌아갔다. 이는 ‘사기’다. 필자가 지배권력의 친중을 비판하는 것은 중국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는 불법을 저지른 귀족층이 자기 책임을 피하려는 의도로, 노론들이 일본에 나라를 파는 맥락의 변장된 복원을 비판한다.
약속이 다 씹혀지니까, 이 사회는 전문가가 필요없다. 전문지식은 약속위에 주어진다. 약속위에 주어지니까, 국경을 넘어서도 소통이 된다. 이를 포기한다. 그러니까, 전라도 패권시대의 한국은 국제사회와 충돌이 자꾸 발생한다.
성경에 하나님과 약속을 깬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나?
한국은 경제위기로 조금이라도 하락하면, 극심한 시장불신으로 들어갈 것이며 정책이 안 먹히는 지경으로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