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화시스템은 결국은 미국의 부채가 100% 이상에서 30%대로 떨어졌으니 가능했다.
다시 말해서, 다시 100%대의 부채가 30%대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세계화체제가 안 온다.
필자가 만해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 부르는 현상을 지적했는데, 한국경제도 심각하다.
미국이 부채를 증가시키면서 소비력으로 미국 밖에 제조업으로 진출한 영역에서 나간 생산시설이 꾸준히 생산시설을 증가하는 일은 없다.
미국 서민들이 상당히 대공황으로 집을 잃을 거 같다는 미국 경제유튜버의 자국경제 예상.
미국 경제유튜버는 리만사태 이전으로 세계 경제가 되돌아간다고 한다.
꼭, 한국경제란 거대신문이 자유민주당 고영주 변호사 세계관 수준에 머문 것은 아닌지?
만팡지게 부채를 늘린 기업과, 그 기업에 연고자는 노예가 되라. 그 상태로 희망고문은 길게 안 간다.
경제원리의 이면에 성서적 내러티브 있다.
부채와 연결돼서 성경은 다양한 비극 논리를 설명한다. 함부로 부채를 안 지는게 성서적 논리다.
지금 자유무역을 그리워하면 어쩌란 말인가?
바이든이 계속 수직팽창했던 부채 ..... 이를 유지하려고 갈수록 부채가 늘었다. 트럼프의 관세는 관세를 위한 관세가 아니다. 터뜨리자는 것이다.
시장경제지대는 기독교문화가 있다.
창세기에 ‘노아의 방주’처럼, 어떻게 남아 있는 자원을 그 뒤로 넘기느냐 생각이 없다.
세계화체제로 전제되는 많은 기업이 망할 것이다.
노무현을 긍정평가했네, 이명박을 긍정평가했네가 아니라,.....
부채시계 멈추기 위해서 그냥 뿌러뜨리자는 상태인데, 여기서 죽은 자식 불알 만지고, 죽은 자식 거시기에 용두질 치는 느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