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 잡히는 「아시아 독트린」|닉슨 아시아 순방 중의 어록

1969.08.07 https://www.joongang.co.kr/article/1206054

「닉슨」 대통령은 「아시아」·「루마니아」·영국의 각지에서 갖가지 이야기를 하고 여러 가지 포부를 말했다. 거기에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려는 미국대통령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이 생각된다. 「아시아」여행 중의 그의 발언의 일부를 발췌한다.

<상호 이익 위해 협력필요>

자카르타(7월27일)미국 현정권의 커다란 목표의 하나는 「인도네시아」와 .미국사이의 우호협력 상호신뢰 원조의 유대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귀국의 이익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나는 것은 평화와 독립이 태평양지역 나아가서는 세계에서 존속여부를 결정짓는 것이 되기 때문에 양국의 이익이 되는 것이다.

방콕(7월28일) 「아시아」제국이 져야할 책임을 「아시아」 제국으로부터 뺏으려 하지 않고 자국의 방위·개발에 대한 「아시아」 제국의 노력을 지지하는 것이 미국의 과제이다. 왜냐하면 침략자의 지배가 일국의 자유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이라면 보호자에게 너무 의뢰하는 것도 결국은 그 나라의 위신을 침식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시아」에서 구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즐 수 있는 협력을 얻어 스스로의 길을 걷고, 스스로의 운명을 추구하는 자유제국의 공동체, 각국이 스스로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상호협력을 통해 발전해가는 「아시아」 독립제국의 공동체이다. 그런 체제아래서 우리는 그 공약과 기본적 이익에 따라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할 용의가 있다.

<정부선택할 권리 가져야>

사이공(7월30일) 이제야말로 새로운 전쟁을 유발하지 않을 전쟁을 종결, 월남국민에게 스스로가 원하는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주어 동남「아시아」의 다른 제국이 같은 권리를 보유할 수 있게 되도록 전쟁종결을 초래해야할 시기이다.

미국도 월남도 전쟁사상 유례없는 관대한 평화제안을 했다. 우리측이 제안한 것은 화해의 화평이다. 국민이 결정을 행하는 화평이다. 우리는 평화에의 문을 여는데 있어 갈 수 있는데까지, 그리고 가야할데에 까지 갔다. 이제는 상대방측이 이에 반응할 시기이다.

<타인에 이상강요 말아야>

뉴델리(7월31일) 우리는 인도의 비동맹정책과, 평화탐구에 독자적인 방법으로 역할을 다하려는 결의를 존중한다. 중요한 것은 평화가 어떤 식으로 유지되는가가 아니고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평화는 자제를 요구한다. 인간이든 국가이든 상호 존경에 기초를 두고 서로의 인내에 실증된 사회적 노동의 기본적 준칙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데에 나타난다. 일국이 타국의 국내문제를 지시할 권리를 주장하면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리 스스로의 이상을 열렬히 믿을지라도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여 평화인으로 자칭할 수는 없다.

본질적으로 말하면 평화는 공동사회의의-인류의 공통의 운명의 인식, 인류의 공통의 존엄, 공동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협력방식-에 기초하고 있다. 「아시아」에 출현하고있는 지역협력의 새 방식이 평화의 보루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이유에서이다. 



트럼프는 제2의 닉슨 독트린을 만들 수 있나? 

2025-03-19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87757.html

트럼프는 전후 미국 대통령 중 닉슨에 이은 유일한 ‘리얼리스트’(현실주의자)이다. 문제는 닉슨과는 달리, ‘네안데르탈 현실주의자’, 즉 야만적 현실주의자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제2의 닉슨이 될 수 있을까?

 전후 미국의 대내외 정책을 전환시킨 대표적인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이다. 그는 대외정책에서는 ‘닉슨 독트린’과 미-중 연대, 소련과의 데탕트, 경제에서는 ‘닉슨 쇼크’라 불린 달러-금 태환 정지 선언과 변동환율 체제로 이행 등을 감행했다. 그 결과는 대외정책에서 주적이던 소련 붕괴의 단초를 만들었고, 경제정책에서는 지속 불가능해 보이던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고 추락하던 달러 가치도 유지할 수 있게 해줬다.

닉슨은 취임한 지 6개월 뒤인 1969년 7월25일 국외 순방 중에 미국의 태평양 전진기지인 괌에 들러서 “핵무기를 가진 열강의 위협을 제외한 군사방위 문제인 한에는 아시아 국가 자신들이 책임을 도맡아 대처”하라고 발표했다. 아시아 방위는 아시아가 책임지라는 닉슨 독트린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나온 닉슨 독트린은 미국이 그 전쟁에서 발을 뺀다는 의미였다. 더 나아가 중국과의 화해를 겨냥했다. 1971년 7월9일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의 비밀 방중은 중-소 사회주의 블록을 완전히 해체하고, 반소련 미-중 연대를 일구는 지정학적 대전환을 열었다.

닉슨의 이런 조처들은 당시 이를 받아들이던 동맹국이나 세계 각국에는 쇼크가 아닐 수 없었다. ‘미국이 동맹국들을 버린다’는 반응과 충격이 나왔다. 미국이 방위 부담을 덜겠다는 아시아 동맹국들은 물론이고, 유럽 각국도 미국의 베트남 종전 추진과 금 태환 정지에 미국이 패권국가로서 의무를 저버리고 있고, 쇠락한다고 의심했다.

지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하는 조처와 이에 대한 반응은 닉슨 때와 유사하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종전 합의를 고리로 러시아와 밀착하며, 동맹들이 이제는 스스로 방위를 책임지라고 닦달하고 있다. 특히, 종전되면 우크라이나에도 개입하지 않을 테니, 유럽이 알아서 하라고 떠밀고 있다.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 책임이라는 닉슨 독트린과 유사하고, 한발 더 나갔다. 닉슨은 적어도 동맹을 폄하하지는 않았고, 국제질서에 대한 미국의 역할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동맹을 폄하하고, 더 이상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유지나 확장에는 관심이 없다. 닉슨 독트린은 아시아에서 중국의 존재와 일정 정도의 세력권을 인정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털고 나옴으로써, 러시아 세력권을 깨끗이 인정하고 있다.

 

(중략)

 


닉슨 이후 미국은 심각한 인플레와 전세계적인 퇴각을 겪었다. 하지만 닉슨이 닦아놓은 정교한 지정학적 전략은 결국 미국의 패권을 강화시켰다. 트럼프는 전후 미국 대통령 중 닉슨에 이은 유일한 ‘리얼리스트’(현실주의자)이다. 문제는 그가 닉슨과는 달리, ‘네안데르탈 현실주의자’, 즉 야만적 현실주의자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제2의 닉슨이 될 수 있을까?
 

 

世界多極化:ニクソン戦略の完成
2007年12月18日田中 宇 

 

                                             세계 다극화 : 닉슨 전략의 완성

 

                                                          世界多極化:ニクソン戦略の完成

 

                                   2007年12月18日  田中 宇  번역 오마니나

 

요즘 신경이 쓰이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닉슨 행정부는 세계를 다극화하려고 했다"라는 것이 있다. 1969년부터 74년까지 계속된 미국의 공화당 정권인 닉슨 행정부는 그때까지 10여년간 계속되던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미군의 피폐, 소련의 군사능력의 향상, 경제분야에서 일본과 서독의 대두, 미국의 재정적자 증가와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불리한 상황의 확대에 대한 대책으로서, 일본과 유럽 등의 동맹국에게 군사적 자립을 요구한 1969년 7월의 "닉슨 독트린"발표, 1971년 8월의 금달러 교환 정지 (닉슨 쇼크) 1972년 2월의 닉슨 중국 방문, 72년의 대소협약(SALT), 73년 베트남 종전(파리 협정)등의 정책을 단행했다.

 

닉슨 독트린과 중국 방문, 친소 유화책 등과 같은 일련의 외교군사 전략의 이면에는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는 "2극" 냉전구조의 세계 체제보다도, 미국 · 소련 · 중국 · 일본 · 유럽이라는 5개의 대국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다극"(multipolar)적 세계 체제가, 미국의 군사력 · 경제력이 저하했을 경우의 안정이 크다고 생각하는 닉슨 대통령 자신의 신념이었다고, 닉슨 정권의 국방장관이었던 멜빈 레어드 (Melvin Laird)가 1985년에 발표 한 논문 "A Strong Start in a Difficult Decade"에서 썼다. 즉 닉슨은 "다극주의자"였다는 것이다.

 

닉슨 독트린의 전제로서, 세계에 자율적인 극이 여러 개가 있는 다극적인 세계가 탄생하는 것이 미국에게 바람직하다라는 개념이 존재했다는 것은, 1974년에 미 공군의 연구자가 쓴 논문인 "National Security in a Decade of Transition"에서도 지적되었다.

 

이전부터, 현재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다극주의와는 정반대의 전략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다극화를 초래하는 "그림자 다극주의"가 아닌가 계속 의심하고 있는 나에게, 닉슨이 다극주의자였다고 전 측근 등이 논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사실은, 큰 의미를 갖는다. 이전기사에도 썼지만, 닉슨에서 레이건을 거쳐 지금의 부시에 이르는 3개의 공화당 정권은 모두, 무모한 재정적자의 확대와 전쟁에 의해 미국의 패권을 낭비한 후에 "현실책으로의 전환"이라고 칭해, 세계의 다극화를 촉진하고 용인하고 있다.

 

닉슨은 1950년대,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다. 아이젠하워는 재래식 무기보다 핵무기를 중시하므로서 군사비를 효율화하고, 냉전의 지속성을 목표로 한 "뉴 룩(새로운 전망)" 이라는 전략을 전개했다. 그 때문에 닉슨의 다극화 전략을 "뉴 룩"의 연장판이라는 전망도 있는데, "뉴 룩"이 냉전의 영속화인데 반해, 닉슨의 다극화는 냉전의 종결을 목표로 한 것이며, 구체적 방법은 비슷하지만, 세계전략으로서의 본질은 정반대다.

 

▼ 중국방문

 

닉슨 정권의 다극화 전략의 내용은, 다방면에 걸쳐있다. 가장 명백한 다극화 정책은, 베트남 패전기인 1972년 2월의 "닉슨 방중"이다. 미국은 1950년의 한국전쟁에서 중국군과 싸운 이래, 중국과 적대관계에 있었는데,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함에 있어, 북베트남에 큰 영향력을 가졌던 중국과 화해하므로서, 철수를 용이하게 하려는 전략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1950년대까지는, 중국은 소련과 사이가 좋았지만, 60년대에 중소대립이 일어나, 미국에게 중국을 포섭해 소련을 고립시키는 이점도 있었다.

 

2차 대전 후의 미국의 대 중국전략은,미국 정치권의 냉전파(미영 중심주의, 군산복합체)와 친중국파(자본가, 다극주의)와의 암투의 연속이다. 1949년의 공산 중국 성립 이후, 처음에는 친중국파가 강해, 마오쩌둥에게 방미를 요청하는 구상도 있었으나, 1950년에 냉전파가 북한의 김일성을 유도해 한국을 침공시켜 한국전쟁이 일어나, 미군은 의도적으로 북중 국경까지 육박해 중국군의 참전을 유발해, 미국과 중국을 결정적인 적대관계로 빠뜨렸다.

 

(김일성에게 "남침하면 한국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남북을 통일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것은, 1939년에 히틀러를 끌어들여 폴란드 침공을 시켜 2차 대전을 일으키거나, 1941년에 일본을 끌어들어 진주만 공격을 시킨 것이나, 1980년에 이라크의 후세인을 유도해 쿠웨이트를 침공시켜 걸프전쟁을 일으킨 것과 유사한, 영미식의 개전 이유 만들기의 군사첩보작전일 것이다)

 

한국전쟁으로부터 20년 후인 닉슨의 방중은, 미국 정치권의 친중국파에 의한 반격이었다. 냉전파들은 의회에서 맹반대해서 미중 국교정상화를 실현시키 않고, 닉슨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시켜 전세를 만회했으나, 결국, 미중국교 정상화는 다음의 카터정권 하인 1979년에 실현되었다. 그 직후부터, 중국의 경제발전 (개혁 개방정책)이 시작되어, 냉전파가 관여한 천안문 사건 후의 경제제재 등을 극복하고, 약 30년을 거쳐 중국은 세계의 "극"의 하나로 성장했다.

 

▼ 닉슨 독트린

 

닉슨의 두 번째 다극화 전략은, 1969년 2월의 "닉슨 독트린"의 발표다. 이것은 일본과 한국,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의 동맹국에 대해, 지금까지는 미군이 직접 파병해 지키고 있던 것을, 군사기술과 첩보, 핵우산, 자금 면에서의 지원으로 전환해, 동맹국을 자립시켜, 미국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선언이었다. 1971년의 오키나와 반환은, 이 선언의 구체화 중의 하나다.

 

닉슨 독트린을 "세계 다극화"의 일환으로 보면, 일본이나 독일과 프랑스 등을 미국의 산하에서 분리해, 세계의 "극"이 되는 자립한 대국으로 만드는 움직임인데, 이 다극화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 실패한 이유 중의 하나는, 미국 내의 군사산업(군산 복합체)이 다극화에 의한 냉전구조의 붕괴에 반대한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대미종속에 안주하려는 동맹국이 자립하려고 하지않았기 때문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자립은, 1989년의 냉전종결 이후의 유럽 통합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한국은 느낌으로는 반미지만, 아직까지 군사적으로 미국에게 업혀있다. 일본은, 전후의 발전이 대미종속 하에서 크게 성공했기 때문에 자립에는 딱 질색이라, 닉슨 독트린의 의도를 바꾸어, 일본의 군사확대는 대미종속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규정했다. 일본에서는 좌익도 "호헌"을 이유로, 자국의 군사적 자립에 반대했다.

 

닉슨 독트린은, 이란과 아랍의 산유국에 대한 군사지원 강화도 포함했다(당시 이란은 이슬람 혁명 전으로 친미국이었다). 이것은 내가 볼 때는, 이스라엘(시오니스크)이 군산복합체의 배후로서 미국 정계에 파고든 것에 대항해, 이란과 아랍을 군사적으로 지원해 중동의 힘의 균형상태를 만들어, 이스라엘의 힘을 약화하려고 한 것으로 생각된다.

 

닉슨의 재임 중인 1973년에는, 중동 산유국이 석유의 대미수출을 중단해 석유위기가 일어나, 석유가 급등하면서,  세계의 석유이권을 지배하고 있던 메이저(미영의 거대 석유산업)와 미국 경제는 대 타격을 받아,  그 후의 미국경제 쇠퇴의 단초가 되었는데, 이것도 "이스라엘의 힘을 삭감한다" "미국의 경제적 단독패권을 자멸시킨다"라는 의미에서 다극화 전략의 하나로 보인다.
 
▼ 금 달러 교환정지

 

닉슨의 세 번째 다극화 전략은, 1971년 8월의 "금 달러 교환정지"(닉슨 쇼크)다. 이것은 이전 기사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1944년의 브레튼 우즈 체제(달러 기축 제)의 개시이래, 미 정부가 25년 동안, 세계와 미국에 대해 경제원조와 전쟁비용, 보조금과 공공사업 등의 마구자비적인 낭비를 계속한 결과,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무역 적자 등)가 거액이 되고, 업친데 덥친 격으로 베트남 전의 전비급증으로 달러의 신용불안이 급격히 커져, 미 정부 보유의 금이 유출되어 제로가 되었기 때문에, 브레튼 우즈 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금 달러 교환 보증제를 닉슨이 파기해, 달러 체제가 붕괴한 사건이다. 그 후는, 금본위제를 제거한 유사변동 환율제(스미소니언 체제 등)이 채택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닉슨에 의한 금 달러 교환정지는 어쩔 수없는 조치였다라는 견해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닉슨 정권은 금 달러 교환정지 직전까지 전비의 지출을 계속해, 의도적으로 달러의 신용경색을 악화시켰다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금본위제를 이탈한 것에 의해, 미국은 달러를 제한없이 인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금 달러 교환정지는 미국의 통화패권 확대가 목적이었다는 설도 있지만, 나는그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닉슨 쇼크 이후, 달러중심의 국제통화 체제의 유지에 혈안이 된 것은, 미국이 아니라 영국과 독일, 일본 등이었다. 닉슨 정권의 코널리 재무장관(John Connolly)은 "달러는 우리의 통화지만(달러하락은)너희들(영국 독일 일본)의 문제다."( 'The dollar is our currency, but your problem')라는 유명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닉슨 이후의 역대정권의 대부분은, 여전히​​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의 확대를 방치하고, 금본위제라는 제한이 없어진만큼, 적자가 급증하면서, 1985년의 플라자 합의와 최근의 달러불안 등, 달러의 붕괴국면이 반복되고 있다. 닉슨 이후의 미국은, 달러의 통화패권을 허술하게 취급해, 패권을 자멸하는 경향을 계속하고있다 (유일한 예외는, 영미중심의 국제금융패권을 강화한 클린턴 행정부).

 

닉슨 쇼크는, 레이건 시대의 플라자 합의와 더불어, 일본의 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를 강화했다는 점에서, 세계를 "미국과 유럽, 일본, 러시아, 중국"의 5극 체제로 전환시키려 한 다극화 전략의 일환이다. 통화의 다극화는, 닉슨 시대에는 실현하지 못했지만, 레이건이 냉전을 끝내고 유럽의 국가통합을 권장해, 유로가 탄생 한 것으로, 세계 통화체제는 다극화를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부터 "엔의 국제화"가 떠들썩했지만, 일본은 대미종속 하에서 경제가 발전된 상태를 계속원했기 때문에, 엔의 국제화는 구호 만으로 끝났다.

 

통화의 다극화는, 최근의 달러의 신용불안과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아,중동 산유국(GCC와 이란)이 달러페그를 중단해 독자적인 통화통합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게 되므로서, 새로운 단계에 들어가려고 하고있다. 닉슨이 브레튼 우즈 체제를 부수고, 레이건(과 파파 부시)이 유로의 탄생을 유발해, 지금의 부시가 중동과 동아시아의 통화통합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 국제 통화체제의 30년 역사다.

 

▼ 다극화는 자본주의 100년의 총화

 

미국의 다극주의 정권에 의해 달러가 자멸당하고 있는 것은, 다극주의의 배후가 록펠러 등과 같은 자본가라는 것과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석유위기를 유발해서 미국경제를 자멸시키거나하는 것도, 자본가의 행위로는 이상하다.

 

그러나 동시에, 다극화를 저지해 온 미국과 영국 중심주의자가 지속시키려 했던 "냉전"은, 세계 경제 지역의 가운데, 중국, 러시아 주변, 인도 등(비동맹 국가)의 지역을 "적"으로서 봉쇄의 대상으로 만들어,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구미의 자본가가 그 "적지"에 투자하는 것을 금했다. 미국과 영국 중심의 세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국으로서 발전할 지도 모르는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의 발전을 저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냉전에 의해 적과 아군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것은, 국제자본가들에게는,시장과 투자 대상이 크게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가는 "소비자"의 증가를 원하는데, 냉전구조는, 중국, 인도, 러시아 등에 사는 인류의 절반을 "소비자" 삼을 수없는 상태로 만든다. 따라서 자본가가 "미국의 경제발전" 이나 "올해의 이득" 등과 같은 협의의 돈벌이 만을 희구한다면, 미영 중심주의와 함께 달러 기축제를 영구적으로 해도 상관이 없겠지만, 세계의 100년 단위의 경제성장을 생각할 경우, 냉전과 미국과 영국중심체제의 집착은, 오히려 부수어야만 하는 대상이 된다

 

▼ 그림자 다극주의와 PNAC

 

닉슨은 1974년에 워터 게이트 사건으로 실각하고 그 이후, 미국에서는 "다극화"를 언급하는 정권은 사라지게 되었다. 미 정치권에서는 군사산업과 이스라엘이 결속한 우파세력(군산 이스라엘 복합체)이 강해져, 미영 중심주의에 기초한 냉전의 지속을 목표로 해, 다극주의를 적으로 간주했다. 이것에 대해 다극주의세력은, 군사산업과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는 전략을 추진해, 그것을 대실패하게 유도하므로서, 미영 중심주의를 부수고, 결과적으로 다극화의 방향으로 끌고가는 "그림자 다극주의"가 되었다.

 

레이건 행정부는,군사산업과 이스라엘을 위한 정권이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냉전을 끝내고, EU를 탄생시켰다. 지금의 부시 행정부는, 테러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의해 군사산업과 이스라엘에 공헌해야 하는데도 대실패해, 미군은 피폐하고, 이스라엘은 궁지에 몰려있다. 부시 행정부의 군사 · 외교 · 재정 · 금융 등의 다방면의 전략을(의도적으로) 실패시킨 결과, 사태는 닉슨이 이루지 못한 "다극화"의 방향으로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그림자 다극주의"의 좋은 사례는, 2003년의 이라크 침공을 추진했던 "PNAC"(미국 신세기 프로젝트)이다. 이 조직은 1998년, 현 부시 행정부를 낳은 대통령 선거 의 운동기간 초기에 만들어진 싱크탱크이자 압력단체로, 목표는 미국정부에게 이라크 전쟁을 거행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멤버는 부시 행정부에서 부통령이 된 체니, 국방장관이 된 럼즈펠드 외에도 국방 부장관이 된 울포위츠와 부통령 보좌관이 된 루이스 리비 등의 "네오콘"으로, 그들은 정권에 들어간 후,  911 테러사건으로 미국이 전쟁모드(유사시 체제)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이라크 침공을 주장해, 목적에 도달시켰다.

 

나는 당초에, PNAC는 군산+이스라엘 복합체의 파견기관이라고 생각했다(지금도 많은 분석가들이 그렇게 보고있다). 하지만, 이라크 침공은, 걸프 전쟁을 일으킨 파파 부시 행정부도, 그 다음인 클린턴 행정부도 회피해서 실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파파 부시는, 걸프전쟁에서 이라크 군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냈지만, 미군을 이라크 영내까지 진군시키지는  않았다. 클린턴도 이라크 공습은 빈번하게 했지만, 지상군으로 침공하지 않았다.

 

이라크에 미 지상군을 집어 넣으면, 게릴라전이라는 수렁화에 휘말려, 베트남적인인 군사력의 낭비로 이어질 것을 알았기 때문에, 대통령들은 이를 회피한 것이다. 그러나 아들인 부시는 본인이 우둔하고, 측근들이 PNAC세력 이었기 때문에 자멸적인 이라크 침공을 거행해, 제대로 수렁에 빠져, 베트남 전쟁 이후의 미군의 피폐를 초래했다.

 

미국의 군사산업이 원하는 "돈벌이 전쟁"은 공군과 해군의 신무기를 사용해 압승하는 단기전이지만, 이라크 전쟁은 이와 정반대의, 지상군 소모형의 장기 게릴라전이다. 이라크의 수렁화로, 중동은 반미 반이스라엘 게릴라(테러리스트)의 소굴이 되고, 이스라엘은 궁지에 빠져있다.

 

이러한 전개를 보고,PNAC는 "군산+이스라엘 복합체"의 파견기관이 아니라 "군산+ 이스라엘"의 가면을 쓴 "다극주의"조직이 아닌가 라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 PNAC의 사무국은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연구소"(AEI)와 같은 건물에 있으며, 사무원도 AEI에서 파견으로, PNAC의 모체는 분명히 AEI이다.

 

AEI는,공화당을 지원하는 미국의 대기업 들(재계)에 의해 만들어져, 자본가 계통의 조직이다.닉슨의 전략이 다극주의임을 지적했던 전술한 논문을 쓴 닉슨 정권의 레어 전 국방장관이 이 AEI의 주요 일원이다. AEI는, PNAC 이외의 장에서도, 네오콘적인 강경책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모두 "그림자 다극주의" 로서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의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 궁지에 몰린 영국

 

원래, 미국의 패권은 영국에게 받은 것이다. "미국이 자국의 패권을 함부로 다루고 낭비하는 것은 그것이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라고도 할 수 있고, 반대로 "공짜보다 비싼 것은 없다" 라는 점에서, 영국은 미국의 세계전략을 배후에서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할 수있다.

 

영국은 제 2차 대전으로 피폐해서 자멸적으로 패권을 잃었지만,이 때, 미국정부와 재계에 패권의 맛을 각인시켜, 미국에게 패권을 이양해서 영국이 그 배후가 된다라는 미영 중심주의 체제(미영동맹)를 만들어, 자국이 약체화하더라도 패권이득의 일부가 자국으로 흘러 들어오는 장치를 만들었다. 유럽​​을 지정학적으로 보면, 영국의 적은 독일과 러시아인데, 냉전구조 속에서는, 독일은 미국에 의해 동서로 분할되고, 러시아(소련)도 미국에 의해 적대하게 하면서 미국은 영국의 동맹국으로 계속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영국은 평안했다.

 

또한 미국이 만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의 5극이며, 다극주의다. 하지만 이 제도는 영미 중심주의에 따라 추진된 냉전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이에 대해, 닉슨 이후의 다극화 전략은 영국에 대한 냉대를 목표로 했다. 닉슨의 세계 5극화는 "미국과 유럽,러,일,중"이며, 영국은 "유럽"에 갇혀 버리게 되었다."유럽"은 "유럽 통합"을 암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레이건이 유발한 EU탄생에 의해 실현되었다. EU의 탄생에 의해, 유럽에서 적대 경향이 있었던 독일과 프랑스는 영구적으로 통합되어, 두 번다시 적대할 수 없게되었다. 프랑스를 우방으로 삼은 독일을 봉쇄한다는, 영국의 역사적인 대륙 분단전략은 영원히 무효화되었다.

 

EU의 탄생은,영국 자신의 "내부분열"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의 연합 왕국(UK)인데, 이제 스코틀랜드 인의 40%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한다. EU에 가입하면, 영국에서 이탈해도, 스코틀랜드는 국가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연합 왕국에 남아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스코틀랜드 사람도 44% 지만, 이탈파 늘어나고 잔류파는 줄어들고있다.

 

영국은 전 블레어 정권이, 그림자 다극주의인 부시정권을 미영 중심주의의 방향으로 되돌리려고 해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협력한 결과, 군사 · 경제적으로 피폐하고, 정치적으로도 친미와 반미가 격돌해, 혼란하고 있다. 영국은 오랫동안, 미국과 똑같은 경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주택 버블의 붕괴, 서브 프라임 금융위기도 일어나고 있으며, 영국경제는 더욱 힘든 상태가 된다. 미국과의 동맹을 고집해 파탄하는 영국에게 호감을 잃어, 영 연방에서 탈퇴해 EU로의진출을 원하는 스코틀랜드 인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 다극화하면 전쟁은 줄어든다?

 

1차 대전 이후, 인류역사의 숨겨진 중심은, 영국의 국가전략의 발전형인 미영 중심주의와, 자본주의의 정치이념인 다극주의와의 상극이자 암투이며, 그것이 수많은 전쟁의 배경에 있다. 미영 중심주의는, 일본과 독일의 부상을 저지하기 위해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냉전을 아시아로 확대하기 위해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유발했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미영의 전략 상의 마찰이, 수 차례의 중동전쟁, 석유위기, 이슬람 혁명,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 전쟁, 테러전쟁, 이라크 전쟁의 배경에 존재하고 있다.

 

영국은, 미국의 군사산업의 이권을 확대해 주므로서 미영동맹을 강화했고, 이것도 미국과 영국이 전쟁 만을 해야하는 상태를 낳았다. 건국 시에 영국의 책략으로 인해 아랍과의 지속적인 전쟁상태를 강요받은  이스라엘은, 그 후 미국을 좌지우지하므로서 자국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지만, 이러한 요소도 미국을 중동에서의 지속적인 전쟁에 말려들게 한다 . 또한, 미영 중심주의에 대한 보복을 시도한 다극주의가, 미영 중심주의적인 전쟁을 대대적으로 과도하게 유도해 실패시킨다다는 전략을 채택했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은 점점 더 전쟁에 집착하게 되었다.

 

금후에도  부시의 그림자 다극주의가 성공해, 미영 이스라엘 중심주의가 완전히 청산되어, 세계가 다극적인 상태가 되어 안정된고 하면, 그 세계에서는, 전쟁이 극적으로 줄어들 지도 모른다.

 

"러시아와 중국은 호전적이고 패권 싸움을 하기 때문에 전쟁은 증가할 것" 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많을 지도 모르지만, 그 개념은 냉전형 미영 중심주의의 선전의 영향을 받고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오래된 형태의 제국으로, 자국의 영향권이 명확하고, 그것을 침해받거나 도발당하지 않는 한, 전쟁을 하지않는 경향이 강하다. "영향권"등과 관계없이, 전 세계적으로 전쟁을 의도적으로 유발해 온 것은, 미영 중심주의라는 신형 제국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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