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 칼럼] 대학은 이렇게 죽어간다
베를린, 베이징, 그리고 보스턴의 하버드의 교훈: 한국 대학의 현실과 미래
김성윤 주필
경기데일리 : 202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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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성지’에서 ‘정권의 도구’로 전락한 훔볼트 대학교
1910년 독일, 당시 베를린 대학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학문 중심 대학으로 손꼽혔습니다.
물리학, 화학, 역사학, 철학까지 모든 학문에서 ‘최초’와 ‘최고’가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연구 중심 교육, 교수의 학문 자유(Lehrfreiheit), 학생의 학습 자유(Lernfreiheit),
자율적인 교수 임용등은 오늘날 우리가 ‘대학의 이상’이라 부르는 거의 모든 기준이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1933년 1월,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베를린 훔볼트대학은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5월 10일, 대학 정문 앞 광장에서 7만 명이 모인 가운데,
나치당과 SA(Sturmabteilung의 약자로 돌격대)
,
SS(Schutzstaffel의 약자로 친위대), 그리고 대학생들이 수천 권의 책을 불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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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비(非)독일적인’ 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토마스 만의 책이 불타올랐습니다.
이후 불과 수년 만에, 비(非)게르만족 교수와 반체제 지식인 수천 명이 대학에서 쫓겨났고,
미국·영국·스위스 등지로 망명했습니다.
베를린대는 진리 탐구 대신 ‘국민(Volk)을 위한 학문’을 수행하게 되었고, 자치권은 전면 박탈당했습니다.
전후 동독 시절에는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다시 한번 교수진이 숙청당했습니다.
그렇게 이 세계 최고의 대학은, 2010년 훔볼트대 총장이 “이제 누구도 이 대학을 모델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고 인정하게 되는
자리까지 추락한 것입니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지식의 전당도, 정치가 개입하면 하루아침에 선전과 통제의 장으로 바뀐다는 점입니다.
전쟁도 이겨냈지만, 공산당 하에서 몰락한 칭화대학교
중국의 칭화대학교는 1930년대 아시아 최고 연구 중심 대학이었습니다.
일본이 베이징을 침공하자 학교는 다른 명문대와 함께 중국 남서부로 캠퍼스를 옮겨 8년간 망명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의 연구와 자유로운 토론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1949년,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자, 상황이 급변합니다.
1952년, 중국 교육 시스템은 소련식 계획 교육 체제로 개편되었습니다.
칭화대는 공학 전문 대학으로 개편됐고, 인문대·법대·농대는 전부 폐지되었습니다.
정치 성향이 문제 된 교수들은 숙청되거나 망명했습니다.
그리고 1966년 문화대혁명 시에는 칭화대는 홍위병의 주 활동지 중 하나가 되어 총장이 공개 구타를 당하고,
노학자들이 거리에서 머리를 깎인 채 조리돌림을 당하는 장면이 매일 벌어졌습니다.
대학 정문은 무너졌고, 마오쩌둥 동상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캠퍼스는 ‘지성의 공동묘지’로 변했습니다.
1978년이 되어서야 대학은 겨우 다시 문을 열었고, 2011년 개교 100주년이 되어서야 종합대학으로 위상을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학문의 자유’는 정치의 그림자 속에 있습니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총칼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상적 통제라는 점입니다.
국가와 함께 걷되, 국가에 휘둘리지 않은 하버드 대학교
하버드는 1636년, 매사추세츠 식민지 법원에 의해 설립된 공립대학이었습니다.
독립전쟁 중엔 워싱턴 장군의 본부가 되었고, 남북전쟁과 1·2차 세계대전에도 캠퍼스를 병영으로 내주며 전시 협력에 앞장섰습니다.
핵무기 개발, 첨단 무기, 지역연구, 정보 분석까지, 미국의 승리 뒤에는 하버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타 대학과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버드는 정치에 이용당하지 않았습니다. 반전운동, 흑인 인권운동, 여성해방운동, 성소수자 연구 그 어떤 사회적 이슈든 하버드는
때로는 ‘국가’를 비판하고, 때로는 ‘지식인 양심’의 중심이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를 적대시하며 세금 문제, 입학 정책, 연구 지원금 등 다방면으로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독립된 사법부와 학문의 자유를 지키는 제도를 두고 있었고, 하버드는 자신을 방어할 자원이 있습니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정권과 국가에 협력하면서도, ‘정신의 독립’을 지킨 대학만이 살아남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칼럼은 This is How Universities Die, Higher ed thrived in Berlin and Beijing.
Then government stepped in. by William C. Kirby (Haverd Magezin, 2025, Commentary | 6.5.2025)을 요약 정리한것이다.
다음호에서는 한국 대학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로 이어 가겠습니다.
※ 원문 저자: 윌리엄 C. 커비 – 하버드대 중국학 교수
※ 해설 정리: 김성윤 – 정치학 박사, Newsly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