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근대 유목민과 농경민의 관계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은 유목민 측이 일방적으로 농경민족을
괴롭히는 즉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유목민족이 근대 들어 사실상
사멸하고 우리가 보는 컨텐츠가 농경민족 입장에서

침략해오는 유목민과 그를 기반으로 한 내러티브니까고.
사실 농경민족이 유목민족을 괴롭힐정도로
농경민족이 유목민들에 가지는 강점도 많았음.
1. 인구

[ 1 에이커당 칼로리 생산량: 감자, 양파, 당근, 토마토, 셀러리, 소고기 / 동일 면적에서 감자가 부양할수 있는 인구는 소고기의 약 50배 ]
농경민이 유목민족에 가지는 최대의 우위는 인구규모임.
기본적으로 토지면적당 칼로리 생산량에서
고기는 곡물을 절대 못따라오기 때문.
유목민족이 고기를 좀 더 잘먹어 체구가 더 크고
평균적인 전투력이 높다 한들

옛부터 내려오는 격언이
그러듯 언제나 다수는 소수보다 유리함.
그래서 국내 정세가 안정된 농경제국들은
유목 국가들을 종종 압도하곤 했음.

[ 토목의 변 ]
반대로 그렇기에 숫적으로 열위인 유목민들이
택한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였을정도.
말 그대로 단순 전방위 공세가 아닌
아니라 한 지역이나 거점에 유목제국의
군사력을 집중시키는것.

[ 란체스터 법칙 ]
이러면 농경민족과 국가 vs 국가 전체
인구비는 훨씬 딸릴지라도 전투가 펼쳐지는
현장에서만큼은 순간적인 숫적 우위를 지닐수 있음

[ 식량 부패를 고려시 5만명의 행군 병력을 위해 필요한 식량: ' 최소 ' 하루에 100톤에 짐을 끄는 소들을 먹일 건초까지 생각하면 훨씬 많아짐. ]
특히 전근대는 지금과 같이 철도도,
트럭도 없었기에 정주제국에서 병력을
보내고 보급을 하는건 사람의 발 내지
우마를 통해서 하는거라 한 세월이었고
유목민 특성상 이동 속도가 농경제국보다
빠를수 밖에 없었기에 이런 기동성을 이용해
각개격파로 농락할수 있었음.

더군다나 전근대만 해도 GDP는 거대할지언정
대부분의 생산물은 농부들의 뱃속으로 들어가기에
전근대 왕조들이 운영할수 있는
재정은 고작 GDP 대비 2-3% 남짓.

그래서 가끔 보면 송나라나 또는 서유럽 국가들이
세입의 65-80%를 군비로 썼다하면 현대인 입장에서
" 뭐 이런 나치를 능가하는 미친 군국주의 국가들! "
이라고 생각할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애초에 사람이
밥 먹고 나서 사용할수 있는 잉여생산물 자체가

[ 근대랑 비교해서도 구매력은 현대 들어 급증해, 세계대전때 수준 GDP 대비 세입을 ' 평시 ' 에 운용중 ]
얼마 없는지라 구매력 자체가 적어 군비에 붓고나면
남는돈이 없었기에 일어난 현상이란것. 그러나 이런
대규모 잉여생산물이 확보되는것 자체가 유목민족에게는
있을수가 없었고 여기서 바로 농경민족의 2번째 강점으로
이어지는데 그건 규모의 경제와 분업화임.
2. 분업화

[ 유목민 공예품 ]
유목민족이 밀린 또다른 이유는
산업 더 정확히는 대량 생산이 가능한
경제 시스템이 아니었기 때문임.
물론 가내수공업이나 소규모 장인 집단이
없었던건 아니긴 함.

문제는 그게 아무리 적은 인구라지만
수십만에서 100만이 넘는
인구에 보급할수 있는 규모였냐하면 결코
아니였고 그래서 유목민족들에게 교역은
생존과 연관된거였음.

그렇지 않다면 약탈로 가져오는거였고.
칭기즈칸이 왜 유목제국 세우고
대규모 무역 사절단부터 보냈는지 생각해보면 됨.
그리고 농경민족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이런 레버리지를 통해 유목민족에게 유리한
협상을 가져오거나 심지어는 그들의 군사력을

[ 중국으로부터 대량의 비단을 공급받은 유목제국들 ]
이용하기까지 했음. 대표적으로 유목민들
갑옷 속 내의 재질이 되었던 비단이나
또는 무기에 들어가는 강철들임.
누에를 통해 짜야하는 비단은 말할것도
없고, 철조차도 일단 광석을 캐고

[ 철에 대한 독점 및 수출 통제를 실시했던 중국 왕조들 ]
그걸 제련할 대규모 시설과 기술자들을
확보하는데 있어서 옮겨다니는 생활패턴부터
미약한 생산력까지 생산 부문은 유목민족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했음.

[ 스텝 초원지대에서도 농업이 가능하면 농업을 할 려 했음 ]
괜히 유목제국의 최종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정복왕조가 상무 전통은 유지하되
피정복지인 농경사회의 경제는 크게 건드리지 않는
방식을 채택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고.

[ 몽골 고원은 생산력 부족으로 무려 2000년간 50만명대 인구를 못벗어남 ]
그러나 결국 이것조차 지속적 기술 혁신과
보다 인구증가를 극대화 하는데 중점을 둔
농경민족에게 밀렸고 그게 근대 이후 산업혁명을
통한 생산력 전반 특히 총기의 대량 보급

[ 바이슨에 의존해 살아가던 북미 유목 부족이 철도에 의해 이동 루트가 사실상 절단되며 몰락 ]
및 철도를 통한 유목 루트를 방해하는등으로
유목민은 완벽히 시대에 도태되었는데
바로 이 기술혁신과 경제발전의 바탕에는
정치적 안정 더 정확히는 체제 안정이 있으며
유목민족 대비 농경민족의 엄청난 강점이었음.
3. 체제 안정성

[ 경제 발전을 위해선 정치 안정이 선결되어야함 ]
정치 안정하면 서로 국회의원들끼리 서로
하하호호하고 진중한 토론 이런걸 생각할텐데
여기서 말하는 체제 안정성은 그런걸 떠나
한 국가의 정부 시스템 전복 및 운영 지속 가능성 얘기.

[ 정치 안정성 덕에 산업혁명이 가능했던 영국 ]
예컨데, 영국에서 시작된 의회민주주의는
권위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여러 의견이 튀어나오고 불안정해보이지만
근대에서 가장 안정적인 체제로 꼽힘.

[ 1600년대부터 현재까지 쿠데타 시도와 실제 성공한 국가들 ]
왜냐면 쿠데타나 혁명등 폭력이란 수단 대신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을 보았고 비록 사이다는
없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줄이는쪽으로 가서
명예혁명 이후 300년 넘게 체제 전복이 이루어지지
않았음.

[ 권위주의 체제는 정치 쿠데타와 측근의 배신에 매우 취약하고 독재자들이 매번 피의 숙청을 하는 이유 ]
반대로 강력한 상명하달 구조에 군주로
권위를 모으는 체제는 언뜻 보기에
겉으로 표출되는 불만이 억압되어 잡음이 없고
최고결정권자의 결정에 군말없이 따르니
안정적인것처럼 ' 보일지언정 ' 쿠데타나

[ 5.15 사건 ]
전쟁, 혁명등으로 순식간에 나라가 뒤집어지는게
일상이었음. 섬과 대륙이란 차이가 있다 생각한다면
일본제국이 얼마나 빠르게 정부가 와해되고
체제가 쉽게 폭주기관차화 했는지 영국이나 미국등과
비교해보면 됨.

마찬가지로, 농경민족의 정치는
잉여생산물이 쌓이며 제도와 사상기반을
발전시킬 역량이 구축되었고 종법제와 같은
관습을 더해 체제에 대한 정당성 확립은 물론
전복 가능성을 극히 줄였음.

[ 자연재해로 국가 붕괴나 내전이 일어나는 경우가 농경제국보다 훨씬 흔했음 ]
그에 비해 유목민들은 애초에 대규모 잉여생산물을
식량창고등에 쌓아두는게 불가능에 가까웠고
한파등의 재해가 오면 가축 떼죽음으로 당장

[ 위구르제국 멸망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 한파 ]
내일 굶어 죽냐 마냐의 생존문제였기에
그런 체계적 제도나 사상기반 확립 또한
배부른 소리에 불과해 설령 텡그리 같은

원시 신앙이 있다 하더라도 정주민족을 정복하면
불교나 이슬람교등 피정복지 종교에
동화될정도로 사상의 완결성이 부족했기에
압도적 무력 및 카리스마 이외에는
반란이나 전복 시도를 막을만한게 존재하지 않았음.

걸출한 지도자가 죽으면 유목제국이
분열하거나 아예 중심부족이 몰살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음. 그리고 농경민족은 이런 정치적
내분에 이간질까지 곁들여 서로간 죽이고 죽이는
이이제이 전략까지 사용, 돌궐 제 1 제국도 분열되었고

제 2 돌궐제국도 멸망의 길을 따름. 즉 유목민족은
전근대 조직적으로 통합만 되면 무적에 가까운
군사력을 보여주었지만 애초에 그 전제조건부터가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았고 그렇지 못하게 온갖

[ 최후의 유목제국 준가르의 멸망 ]
견제가 들어왔다는것. 그리고 17세기부터는 유목 제국을
이뤄내도 훨씬 더 거대해진 인구와 생산력에 그를 기반으로
나날이 격차를 벌려가는 기술까지 합쳐지며 압살당한것.
3줄 요약:
1. 농경민이 유목민에 가지는 최대의 장점은 인구규모가 더 많다는것으로 유목민족들은 숫적 열위를 벗어나기 위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써야 했을 정도로, 거대 정주제국은 유목민들 입장에서 버거운 존재였음.
2. 그리고 이런 인구 격차에 따른 생산력의 차이는 곧 유목민들에 대해 철과 같은 전략자원 통제로 유목민들을 쥐고 흔들수 있었으며 훨씬 거대한 경제력을 통한 기술 혁신으로 최종 승리를 거둠.
3. 또한 이런 기술 혁신의 배경엔 정치적 안정이 있었고 이는 잉여 생산물의 축적하 여러 제도와 사상기반을 확립할수 있었기 때문으로,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죽을시 종종 내분이 일어나 멸망 코스를 타는 유목민 대비 확실한 강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