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닷컴이 묻어버린 군사정권 때 나에게 ‘本’이 되주신 분들, 그리고 그분들 배후에 역사하신 하나님 -

김영삼 정권을 세우신 동학 할아버지들과 전혀 다른 유형의 분들이 사실은 군사정권 때 주목 받았다.
사회가 망하면 어때? 우리만 이익 즐기고 싶다.
왜 공공도덕 챙기라고 그래? 우리만 이익을 즐기고 싶다.
왜 도덕챙기라고 그래? 확 까뒤집고 싶다.
90년대 출생세대는 구글 이미지 짤에서 ‘박종철 김수환 추기경님’을 쳐서 나오는 사진자료를 이해를 못할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누구는 ‘진리’를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특히, 그 세부의 면을 보면, 더욱더 충격적이다. 가난한 제3세대 국가로서, 문화의 여건이 안됐지만, 전두환 정권의 규제로 외국어 원서로만 머무는 속에서, 다수의 분들은 자신이 이해가 될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계속 반복되는 주장이지만, 90년 군번인 본인은 경기도 야산이 그토록 어두움에 놀랐다. (물론, 노무현 정권 이후 같은 지역은 매우 밝았다) 그때,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 빛이 다른 사람들이 따라가는 길 같았다.
필자는 강용석이 도덕성으로 질타받을 수 있는 부동산강좌에 매달리는 것에 답답했다. 그때 분들은 남이 믿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그 걱정했다. 당연히 진실을 전하는 사람은 투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자는 비운동권이다. 일단, 비운동권이라면 누구나 그랬겠지만, 문익환 목사가 사용하는 모든 개념에 일단 극도의 경계심이 자연히 든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 개념이 ‘전인교육’이란 말에 배경되는 이론과도 겹쳐진다.
조갑제기자의 박정희 이야기는 성인군자 박정희, 민주당의 김대중 시대는 영웅 김대중과 호남 씨족의 집단행위로 기억한다. 씨족 내부는 우주중심(중화), 그 밖은 오랑캐로 설정한다. 그러나, 그 논리가 일제히 배제해버린 진짜 핵심 진실이 있다.
군사정권은 모두가 기억하듯이 유교적인 왕중심 신분제를 사용했다. 그 당시에 엑스세대 보수세력은 많이 태어나기도 했지만, 그 세대는 전부 고학력자가 됐다.
70년생인 나의 중고생시절에 가장 인기 제일 직업은 선생님이다. 반면에, 지금은 인기 제일은 연예인이다. 나를 한국문학 전공하게 만든 아주 ‘나쁜(?)’ 선생님은 광진구 자양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었다. 예수를 믿기 전인데도, 평생의 인생관이 될 만큼 기독교신앙 종말론으로 해석하여 일제 강점기를 버틴 지식인들의 설명을 자주 들었다. 물론, 푸코의 용어를 빌자면 ‘시대의 인식틀’인 에피스테메가 타자인식이 매우 어려운 지형이었다.
유신체제가 붕괴되고 대학의 인문학은 폭발적 성장했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수많은 연구가 나타났다. 그때에 비운동권인 어떤 한 영혼은 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군사정권이 반공만의 절반의 한국사를 썼음을 시인했다. 그런데, 좌우가 동시에 서양법 법치주의로 가능한 한국사는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누구에게 ‘열정 페이’를 해달라고 말한 바 없다.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치에는, ‘교환가치’가 없다.
한국인들이 그 당시에도 ‘지식노동자’란 말을 혐오했던 가장 커다란 원인이 있다.
나의 1948년 건국된 근대국민국가 법치주의 자유민주 대한민국 사랑에는 교환가치가 없다. 선생님의 제자에 대한 사랑도 교환가치가 없다. 얼마짜리 사랑이란 말이 안된다.
무한대다.
일베정게에서 종북박멸사란 나를 싫어한 분(돌아가셨다니 유감)이, 반복되게 원불교 백낙청을 거론하는 것을 싫어했다.
헌법질서로서 48년 건국되는 헌법질서로 서양법 상식으로 헌정질서 이전의 조선공산당 회귀는 형법 내란죄가 맞다. 백낙청에 대한 원한보다는, 법을 지키는 자에게 신뢰를 주는 행정이길 바라는 차원이 컸다.
뉴진스 민희진이가 터뜨린 진짜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자세. 대학은 안티조선에 줄선 사람이 다 먹어야 해!! 여기서, 대학에서 밀린 내가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만다면, 나는 한국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필자는 조갑제를 사쿠라로 맹비난하고 있다.
원불교 정교일치 로 헌법질서 파괴하는 국헌문란이 매일 벌어지고 있고, 조중동은 원불교 백낙청 주도 흔적에 티 안나게 국민 모르겠지 하는 얍삽한 행위하고 있다고 반복해서 지적했다.
필자는 결코 열정페이를 안줬다는 것에 야속해 하며 나의 사랑에 가격을 매겨달라는 입장이 아니다. 시점을 바꾸어서 보니, 원불교 귀족이 난세의 영웅 운운하면서 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랫것들이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일어난다고 하는 사고에, 내가 걸려든 호구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내가 저따위 원불교(사탄교이자 악마교) 귀족을 위한 호구였나?
이 시대에 경제학 영역에서도 교과서 경제학을 지키는 사람들. 남이 뭐라고 해도 그 진실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며 자기와 싸우는 분들. 법학 영역에서도 자기와 싸우며 그러는 분들.
세상에 교과서 지식이 교과서로 작동하는게 자기의 이익과 무슨 상관인가?
반면에 군사정권 막 붕괴됐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무려 30년 넘게 똥물에 튀겨죽을 동학 할아버지들은 위로 받고 칭얼대는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엑스세대인 우리세대들에게. 이 칭얼댐의 종말이 ‘거대한 경제위기’로 원불교 귀족이 뿌러져야 한다면, 뿌러지는게 불가피할 거 같다.
필자에겐 조갑제기자의 윗세대인 20년대생~30년대생 먹물 어르신들을 모방하고 있는 셈이다. 김용삼기자나 조갑제기자나 꼭 후대를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조작하려고 하는 유교 족보논리로 후대를 교육시키려는 기제를 멈춰야 한다고 본다.
조갑제기자가 묻어버린 군사정권 때 자유민주주의에 반복한 내용.
자유민주주의 구현은 곧 신분노예제의 극복을 의미한다.
모두가 양반이 되는 세상을 의미한다.
그때 진정으로 20-30년대생 먹물 어르신들은 그 믿음을 믿었다.
믿음의 전승. 새로운 세대는 새롭게 다시 쌓을 것을 쌓아야 한다.
사실, 대한민국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로 스승의 날을 따지면 그럴싸한 스승을 가진 유명대학교 출신의 날이기 쉽다. 꼬진대학교는 스승 이름 말하기도 민망할 때가 있다. 스승의 날이 그렇게 그런 의미로 그런 사람들 띄우는 날이 아니다.
진리를 향한 평생의 경주. 그 모범을 보이는 것은, 노동개념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엑스세대 보수주의자들의 청소년 때 가장 1등 선망 직업은 학교선생님이었다.
1973년생 한동훈이 당대표로 출마하여 보수사회를 개혁할 수 있다면, 조갑제 지만원 6글자로 묻어버린 정말로 이제는 다음 세대에게 할 말이 있을 수 있는 영역에 발언기회를 주는 것이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