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서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된다? 짐승을 찢듯이 그냥 복수하겠다. 이게 공의의 하나님이다. 이게 예수 시대 이후로 짐승 제사가 필요없는 새 언약이 됐지만, 과거 율법은 하나도 사라진 게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목회지도자들 중에 적지 않은 양반가문이 있었고, 공공연한 비밀이고 현재도 정치인들의 기독교신앙이 씁쓸하지만, 교회조직을 출세의 도구인 조선시대 서원처럼 활용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전라도 유교 세계관에서 성서적인 언약관계는 “아!~! 증말 깝깝하노!” 이런 지경이죠. 이제, 성경을 조작하자. 이런 정서로 민중신학 진영 토착화신학이 나온거고요. (개벽신앙에 교횟말 씌우는 다른 복음)
군사정권은 1인 통치권자의 관치경제가 문제면, 지금은 개뻑다구 개벽신앙이거나, 개신교나 천주교외형에 속해 있으되 예수믿기전에 개뼉다구 신앙에 강한 그리움을 가진 70-80대 노인들이 권력을 구축하고, 이런 메시지를 품었습니다.
<약속 어겨도 돼, 씨족 습속에만 충실하면 돼>
적정 가치보다 월등히 위로 치켜올리고, 그리고 부채로 쳐막거나 미래세대에 전가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그리고, 공의의 하나님은 설교에서 지워버리고, ‘사랑의 하나님’만 남겼죠. 미국에는 슈가코팅만 있는데, 한국은 ‘무속 신앙 코팅’도 있죠.
결국, 시장경제위기는 어떻게 수습될까요?
가장 교과서적 약속의 회복입니다. 그 회복은 성서적 계약사상 복원이 먼저 이루어져야 가능할 겁니다.
만인이 만인에 대하여 약속어기고 민족신화 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씨족규율 밖으로 떠 있는 무교 영웅신 이야기로 가는 노인분들이, 가장 이익을 독점하면서도 후대에 길이 길이 오래 상처로 남는 시스템 왜곡의 주체죠.
약속과 계약이 있어야 사회가 돌아갑니다.
반면에, 개뻑다구 할아버지들은 누가 무능해서 그래!!라고 민족신화로 돌아가죠. 머리가 조금만 있어도 압니다. 왕 혼자만 케어하고, 귀족도 제멋대로, 백성도 제 멋대로, 그게 사회입니까? 그런 사회가 1인이 케어가능하다고 보는 머리가 이상한거죠.
세상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아니오! 할 때 아니오! 하는 믿음에 있어서 보면, 과거에도 쭉 그렇게 사는 분들이 보입니다. 미래에도 있을 겁니다. 기독교인은 예수에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출석자 연고집단을 기독교인이라 부르는게 아닙니다.
한국경제위기 탈출의 가장 기초는 경제에 있어서, 국민이 생각하는 인재(정치인이 생각하는 인재 말고)가 대중의 주목받는 지위에 있는 겁니다. 제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번 공천 잘해주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