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의 미래소득을 담보로 남북연합체에 북한공산당식 배급제 적응화훈련(기본소득)은 약자를 위한 경제학인가? (김대중 경제학은 글로벌 스탠다드 기준 이단경제학)
 
 

일베 정게에서 ‘이준석계’로 추정되는 이들이 ‘약자를 위한’ 운운하는데, 아아아 정말 큰일 났다. 싶었다. 한국사회의 기득권자가 ‘약자’타령하고, 아무것도 못 가진 서민들이되 국민의 힘을 지지하는 층이 ‘강자’로 말바뀜 되는 구조를 깨야 한다.
 
소위 말하는 운동권의 주도는 KNCC 토착화신학파벌이다. 이들이 해방신학도 수입했다. 그러나, 이들의 실제 신앙은 개벽신앙 신관이다. 명분적 허구로는 해방신학 기독교조직이고, 실제는 개벽신앙 민란조직인 KNCC 토착화신학파벌의 세계관을 생각해야 현실이 보인다.
 
1)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법과 규칙을 준수한다. 시장경제는 건전한 중산층을 전제로 돌아간다.
 
2) 공산주의는 배움이 없는 사람들의, 규칙준수가 피곤해서 정부만 보고 살래! 하는 정서를 끼고 있다.
 
3) 법과 규칙을 준수하는 국민의 힘 지지층인 서민은 강자가 되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법과 규칙을 안 지키는 탈법주의 민주당 지지층은 약자가 된다.
 
강자, 약자의 이분법을 추인한 ‘세계교회협의회’의 해방신학을 둘러싼 <삼각 사기극>이다.
 
이 사기극에서 확실히 드러나는게 있다.
 
미국 민주당은 국제적으로는 기독교좌파다. 99대 1로 약자를 위한 경제학을 추구한다. 미국 민주당은 저금리에 기초한 금융노예로 정부에 종속시키는 것을, 강자를 위한 경제학으로 본다.
 
어디가 진짜 약자를 위한 경제학인가?
결국, 민주화운동사 정 중앙에 <복음으로 사기를 친 문제>가 깔려 있음을 알게 된다.
 
호남개벽신앙을 신봉선이라고 보고, 해방신학을 아이유(이지은)이라고 하고, ‘아이유=신봉선’이라고 말해서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본질을 같다고 말한 문제와 겹쳐진다.
 
젊은 세대를 금융노예로 만들고, 좀비기업을 어마어마하게 정부 종속적으로 만들고, 그런 권력으로 파괴력을 행사하는 것은 공산주의 정치다.
 
한국의 복지의 상당부분은 김대중의 생산적 복지에서 기인한다. 강증산 신앙으로 남북문제를 보는데, 그 연장선으로 복지도 가능하겠지 라고 바라본다.
 
그렇게 나타난 복지 중에서 지속가능한게 거의 없다. 목적사업이란 고려연방제에 맞춰서 설계한 것이고, 국민을 중심으로 설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금리를 정상화하여 좀비기업을 망하게 하겠다. 이는 성경적으로 구약신앙의 ‘해방’의 이미지와 맞물린다. 국민소득 등 사물화된 신화를 벗기고 보면, 정당한 약자가 강자를 역전할 수 있는 계기가 경제학의 본래 가치에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 민주당이 ‘경제학 원론’추구가 곧 약자를 위한다는 메시지는 선명하다. 그런데, 황당무계한 것은 정반대로 미국 민주당(물론, 경제원론을 옹호하기에, 미국 공화당이라고 해도 다를 바 없음)과 정반대로, <부동산 노예의 길=약자를 위한 경제학>이라고 보는 국내 여론이다.
 
하이에크는 ‘치명적 자만’에서 마르크스의 이성은 농촌적 정서를 깔고 있고, 복잡화된 사회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고 보았다. 김대중경제학은 ‘전라도 농촌’정서를 깔고 있다. 마르크스나 케인즈 같은 프랑스 계몽주의도 인플레이션 시대에 무력화됐고, 하이에크 같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경제학 이성이 답으로 여겨졌다. 프랑스 계몽주의 이성은커녕, ‘지리산 무당신앙 주술’이 이성을 대체한다.
 
군사정권은 국가를 비난할 수 없었다. 지금은 조선시대 유교사대부 붕당과 똑같이 도통이 되는 붕당 귀족 두목의 약점을 비판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차단되고 있다.
 
너 같이 하찮은 놈에게 김대중경제학이 깨질 줄 알어?
 
그러면,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미국 민주당 성향의 경제책들이 우후죽순으로 한국에 번역된다. 그 기준으로 김대중경제학이 뭐냐 이것이다.
 
사실, 알고보면 국힘 내부의 이준석과 조갑제기자는 권력을 꼭 가지려 하면서, 권력을 쥐면 언제나 개벽신앙으로 우파의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를 이단화하려고 한다. 이러한 조갑제기자가 유럽을 논하고 세계를 논하는 것 자체가 믿겨지지 않는다.
 
복음으로 KNCC토착화신학파가 사기를 쳤다는 것은 깨끗하게 입증이 된다.
 
이 또한 부동산 버블처럼 터져야 할 버블일 것이다. 적당히 조선왕조 농촌정서로 넘어갈 부분이 아니다. 단, 워낙 거대한 범죄로 한국교회가 국민 및 국제사회에서 신뢰도가 나락으로 갈 부분이고, 그런 소송을 실정법이 아니라 성경이 자제하도록 원하기에 터지지 않을 뿐이나, 언제든 입증책임에 입각한 법적 양식으로 ‘사기’를 증명할 수 있다.
 
결국, 법과 규칙을 안 지키고 엿장수 맘대로 지리산 무당신앙 주술을 쓰면 약자를 위한 것이라고 되며, 정말 약자를 위한 이성적 사고는 발도 못붙이는게 한국 사회가 된다.
 
이 사회는 꾸준히 정상적인 지식을 누군가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매스미디어로 대중들에게 생각을 주입하는 쪽은 언제나 개뼉다귀 개벽신앙이 차지하고, 그래서 국민의 생각이 이상하다.
 
촛불 두목 백낙청의 기본소득은 남북연합체를 장래의 민족공산당으로 키우는 고려연방제에서, 남북연합체에 줄세우는 북한식 배급제 훈련 목적이다. 영끌 피해자는 그 과정에서 나타났다. 한동훈 법무장관의 검찰 공안검사가 백낙청-박현채 라인의 경제학과 통일정책의 맞물림을 조사하면 누가 해도 다 나온다.
 
즉, 공산화로 북한식 배급제를 목적으로 하면서, 젊은 세대를 영끌 금융노비로 하는 비용을 친북 친중적인 기성세대가 선택을 했고, 젊은 세대는 낚인 것이다.
 
우파에겐 지난 30년 간 惡이 징벌되는 차원을 본 적이 없다.
 
惡의 심장은 촛불 두목 백낙청, 그리고 통일부 정세현 문정인이 있고, 그 배후에 개벽신앙 호남 라인 좌익조직이 있다.
 
부동산 버블도 꺼져야 하고, 민주화신화의 버블도 꺼져야 한다.
 
민주화신화의 버블(허구)이 터지고, 부당이득은 반환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