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양극화의 발생은 ‘민족신화’의 세계 때문이다.
-민정당 민족주의와 민주당 민족주의 통합 결론-
 

 





다당제를 만들면 이분법적 세계관(우리-남)이 사라진다?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생각이 지극히 황당하다. 물론, 필자는 선거제도는 정치권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본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민정당 시대에 한국사회에 대하여 ‘꽤 정당한 해석과 비판’을 하고, 그것을 1인 통치권자 권력집중에 설명했다. 문희상씨는 거꾸로 된 ‘민정당 논리’로, ‘꽤 정당한 해석과 비판’에 정치권이 원하는 요구를 연결했다.
 
정치양극화의 발생 원인은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와 연결된다. 민정당 민족주의는 잘못이고, 민주당 민족주의는 마치 절대선인 것처럼 표현하던 90년대 초반 문화가 30년이 지나서 결산을 이루었다고 본다.
 
민정당 反共은 영남 개벽신앙(군인의 후천개벽신앙)에 기초하여 공산세력을 민족반역자로 놓고, 民族은 反共으로 주장했다. 김영삼의 역사 바로세우기는 이 군사정권 관행이 역사의 뿌리와는 안 맞다는 주장이다. 6.25 참전군인이 ‘우리’고, 그 반대편이 ‘적’인 신하의 세계가 있다.
 
일제시대 조선공산당 운동과 건국반대운동, 그리고 6.25 때 저쪽(인민군) 참전경험과 그것을 적개시하는 반공체제에서 억울함 경험과, 그 억울함을 해소하는 과정으로서 민주화운동의 씨족사와 얽힌 ‘우리’와 ‘남’(적)인 이분법의 세계가 있다.
 
군사정권은 확실히 부서졌다. 즉, 영남 보수는 이미 부서진 만큼 상대쪽에 양보를 요구하고 싶은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이분법적 사고를 나타내는 <통일부 發> 우파에 대한 오랑캐몰이인 ‘반동 반통일분자 몰이’(통일부는 해방공간 남로당을 우대하고, 한미동맹파를 적개시하는 종족 신화를 남발하며, 이는 정세현 문정인 세력을 처벌하지 않는 고치는게 불가능한 수준이다)
 
군사정권 때 운동권들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이분법적 사고관 이야기하고 他者性을 이야기했다. 모든 국민이 반공실향민이 아니며 남로당의 시점에 속한 헌법에 수렴하는 이들도 있음을 주장했다. 지금 그 주장은 그냥 씹어 버린다.
 
사실, 6.25 전쟁 때 어마어마한 공산당 피해가 있었다. 그 피해자들이 이태원 피해자 가족과 거의 흡사했을 것이다. 분노몰이로 외부에 샌드백 하듯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미국인 자녀가 이태원에서 피해를 겪고, 그 피해자 가족이 보인 문제와 현저하게 대조가 된다.
 
군사정권에서 국가주의는 국가만능주의였다. 이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이승만 박정희 전통이라더니, 군주 만능주의로 바꾸고 더 본질적으로 더 깊숙이 개입하는 거대정부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을 거론하는 영역에서 나타난 ‘욕황상제’라든가, 촛불 운동에 끼어 있는 백낙청의 ‘원불교 후천개벽신앙’이 과연, 정치양극화의 몸통을 겨냥하지 그 궁극적 해소일까 토론이 돼야 한다.
 
박정희 세력이 만든 군사정권의 성리학적 군주관에 대하여, 김대중의 개벽신앙 군주관으로 유불선 합일로 그 지역 亡者영혼을 1인 제사장이 관장하는 것은, 과연 서양적 국민기본권을 보호하는가?
 
이번 이태원 사고에서 여실히 드러났지만, ‘인권’을 보호한다는 이야기는 지난 30년간 ‘사기극’으로 명백히 증명이 된다. 미국인 피해자 가족은 그들이 인권을 몰라서 가만히 있겠는가? 한국인이 알고 있는 인권이 인권이 아닌 것이다.
 
북한인권을 외면하는 공산당 인권 주장의 문재인
박근혜 감옥 당시를 외면하는 북한인권
운동권 씨족여성만 창기고, 아닌 여성은 성희롱하는 박원순
 
이제, 이재명 살리기 운동으로 연고주의로 나아가는 민주당이 나타난다. 촛불 백낙청 두목은 이재명이 고려연방제를 추구하는 연고자들의 ‘정도령’이니 살려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든다. 정작 문제는 고려연방제가 국민에게 무엇이냐 이것이다. 모든 국민이 전부 남로당이냐? 전부 인민공화국을 그리워하느냐?
 
우리사회는 군사정권 때에 학문의 자유로 反共만 제도권에 있고, 용공이 없었다. 지금 학계는 백낙청계열의 공산인사만 자리한다. 모든 세금을 공산파가 독식하고 다 쓰고 있다. 역시, 백낙청계열의 민족문단은 김윤식교수의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에 나온 일제시대 문단 중에서 1개 문단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동시대에 공존한 모든 것을 강제 망각시켰다.
 
50대들은 다 기억한다. 反共편향 시대에 자기들의 영향을 넓히고자 했던 이야기와, 권력을 장악하고 어떻게 과거를 잊어주세요 했는지.
 
이태원가족, 세월호 가족, 뿐만 아니라, 반공시대도 통합하여 권력을 쥔 자들의 氏族을 중심으로, <우리>와 <밖>을 나누었다. 그만큼, 상대쪽에서 법을 따른다는 신뢰를 가지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이제는 문재인의 헌법공동체 파괴의도 뿐만 아니라, 남성욱교수와 권영세의 헌법 공동체 파괴를 묻고 가는 측면으로, 국민의 힘에도 ‘우리’라고 말하기 어려운 <좌파로 기운 그들>을 본다.
 
일베와 언론은 보수우파의 노령화를 반복해서 지적했다. 민족신화에 깔린 ‘종족주의적 우리’와 ‘외부 배척’을 논한다. 이준석 세계관을 보자. 국민의 힘을 이용하는 어떤 종족적 무당을 본다. 조갑제와 이준석끼리의 ‘그들끼리의 우리’가 있고, 보수우파 유권자는 호구다.
 
조갑제 기자 자체가 종족, 부족을 초월하는 객관적 사회적 약속을 안 믿는다. 종족 안에 서양개념을 믿는다. 이는 중국식 시장경제를 미국이 안 믿는 상황가 정확히 배척이 된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결국은 1987년 6월에 서양법을 구현한다는 약속이 사기가 되고, 호남개벽파 두목 김대중이 ‘서도서기’(개벽신앙 안한다)한다는 약속이 사기가 된 것에 기인한다. 法이 국민통합이라지만, 민주당은 개벽신앙 종족정당이 됐다. 물론, 민정당 종족신앙의 나쁜 부분만을 조갑제기자는 띄우고 있는 점과 연결된다. 다수의 젊은이는 法을 통한 국민공동체 통합을 생각하나, 아무도 안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선거구제’와 이 일의 고침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지금 과연 국민의 힘 정치인이, ‘보수우파 유권자를 대변하는 우리’이기는 한가? 윤석열 정부의 향후 대선을 겨냥하여 수도권을 얻고자 하는 포석이 정답은 아니라도 차선은 될 수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민족신화의 유불선 신앙 세계를 강조한 1990년대에 지난 30년이 흘렀다. 그 신앙세계는 무엇인가? 결론이 이젠 투명하다.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이게 90년대 시대정서다.
 
서구적 사고관의 한계
 
이게 90년대 시대정서다.
 
지금은 민족적인 것은 부족적이다.
 
중국적(떼놈적) 사고의 한계.
 
이게 맞다.
 
군사정권의 이분법적 사고관을 비판하면서 극복할 거 같더니, 더 심한 이분법적 사고관을 과시한다. 한국사회의 이분법적 사고관의 뿌리는 ‘화이론’이다. 동시에, 한국정치는 꾸준히 부족주의와 얽힌 특정 정치인 국회보내기 운동과 연결돼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