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독재정권에는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려는 아첨꾼들이 존재한다. 한나라 말기에 십상시가 있었던 것처럼 히틀러에게도 그만의 아첨꾼이 존재했다. 헤르만 괴링, 하인리히 힘러, 요제프 괴벨스 같은 유명한 나치 간부는 아니었지만 나치정권 말기에는 히틀러의 최측근으로 실권을 휘둘렀던 인물이다. 그가 바로 마르틴 보어만이다.
보어만은 학교에서는 퇴학을 당했고 어영부영하다가 징집되어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는데 실전에 투입되기 전에 전쟁이 끝나버려 그대로 제대했다.
보어만의 낮은 학력 뿐만 아니라 전쟁을 경험해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독일을 심각하게 엿먹이게 된다.
그러나 히틀러가 총통으로 부상하기 전부터 히틀러를 알고 지냈고 그의 충직한 비서 노릇을 하면서 장차 최고권력자가 될 인물의 신임을 얻었다. 게다가 운도 따랐다. 그의 상관이었던 루돌프 헤스가 괴팍한 성격 때문에 히틀러의 신임을 빠르게 잃었고, 자연히 히틀러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보어만이 히틀러의 총애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어만의 출세의 열쇠는 히틀러의 예술에 집착하는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뮌헨 폭동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원래 주도면밀함은 없고 이성보다 감성에 의존하는 성격이었는데 (미술에 전념했던 젊은 시절부터) 주변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예술감각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불만을 늘 안고 지내던 인물이었다. 보어만은 이 점에 파고들었다. 그는 히틀러가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쓰잘데기 없는 헛소리들을 소중히 기록하여 보고하는 등, 히틀러의 콤플렉스를 만족시켜 주었다. 히틀러의 눈에는 자신의 예술성을 알아주는 인물은 보어만 뿐이었다.
히틀러 개인의 신임을 받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보어만은 나치 고위간부들 및 군부 장성들에게는 엄청나게 경멸을 받았다. 보어만과 같은 예스맨의 대명사로 꼽히던 빌헬름 카이텔이 그래도 주변 인간관계는 좋았다는 점과 매우 대조된다. 보어만은 성격이 매우 야비하여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의 모함을 일삼았고, 게다가 군사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주제에 군 작전에 간섭하기도 했다. 게다가 성생활도 매우 문란하여 습관적인 성추행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보어만의 천박함과 경박함은 독일 국내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오로지 그 감성팔이가 제대로 먹힌 히틀러에게만 신임을 받았다.
총통 비서로 임명되면서 보어만은 사실상 히틀러의 십상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특히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그의 영향력은 더욱 상승하여 이제는 군사 정책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보어만은 히틀러에게 올라오는 보고서들을 자기가 먼저 보고 받고 히틀러의 감성에 맞게 왜곡해서 보고를 했다. 그런데 가방끈이 짧은 보어만이 재구성한 보고는 다른 나치 간부들이 보아도 아첨의 범위를 뛰어넘은 진짜 개소리였듯, 나치 간부들의 엄청난 미움을 받았다. 친위대장으로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던 하인이리 힘러를 몰락시킨 것도 보어만이었다.
독일 군부 내부에서 그들의 몰락을 부채질한 새끼가 보어만이라는 생각은 팽배했고 보어만은 비록 괴링과 힘러를 끌어내리는데 성공했지만 사실상 정치적으로 고립된 상황이었다. 나치의 몰락을 부채질했다는 점에서는 인류에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지만 인간성과 능력 모두 가장 쓰레기 중의 쓰레기 같은 인물이었다.
히틀러의 신임 이외에 아무 기반이 없던 보어만은 히틀러가 자살하자마자 홀로 베를린을 탈출하려고 한다. 그러나 베를린을 탈출하려던 중, 소련군에게 체포되었고 재판을 받기 전에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