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썻다가 묻힌건데, 학식충 방학하고 시간남아서 몇가지 고쳐서 재업한다.
전에 올릴때는 기것 공들여서 짤로딩 줄이려고 Imgur통해서 올렸더니 오틀에서만 나오고 일베에서는 짤리더라.
그리고 나 역갤러 아니다. 이번에 처음 역사 관련해서 글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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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국정교과서 때문에 시끄러웠고, 지금 문재인 정부 이후
노골적으로 좌경화가 되서 처음으로 정보글을 써보게 됬다. ㅎㅎ
글을 최대한적게 넣고 사진을 많이 넣으려고 했는데
적합한 사진이 별로 없고, 워낙 딱딱한 내용이라 글이 많은거를 양해바랄께....
상당히 내용이 방대해서 70년대부터 시작한다.

1972년 10월 유신헌법을 공표한 후에 박정희 정부는
유신체제를 뒷받침 하기 위해서 국사 교육을 강화해
크게 두가지의 목표가 있었는데
*근데 실제로 장면정부는 개븅신이었다.
1. 민족주체성의 확립을 위한 민족사관 교육
(대한민국의 정통성 확립)
2. 유신체제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교육
(박정희 정부의 정당성 확립)


이렇다 보니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교과서 반대파들이 주로 주장하던게
박정희 시대 처럼 국가주의적 이념이 강화 될것이다! 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때 민족주의의 급격한 확대를 불러일으켜
1970 ~ 1980년대에 재야사학자들에 의해서 2가지 사건이 있었는데
*짤이랑 관계없음
상고사 논쟁
(선사-상고사-고대사 : 아주 먼 옛날 이야기)
상고사 논쟁은 국정교과서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자
재야사학계에서 상고사에 관한 건의서를 제출해
그러나 국사편찬 위원회에서 기존의 이론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거부하자
문교부 장관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어
2년동안 재판이 진행 되면서 집필자를 증인으로 요구하는 바람에 법정 출두 요구서가 가게되고
이번일로 인해 중견 학자들이 집필을 기피하게 되고 국사교육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해 ㅜ....
국사 교과서 파동
위의 상고사 논쟁 이후로 중견 학자들이 집필을 기피하자
재야사학계에서는 자신들의 주장이 반영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공세를 펼치기 시작해
(재야사학계 : 비주류 병신 사학집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국회에 '국사 교과서 내용 시정 요구에 관한 청원'을 제출하게 되었고
국회 문공위원회에서 공청회가 개최를 하게돼
기존 학계측 발표자로 출석한 중견, 장성급 역사학자들이,
그쪽 국회의원으로 부터 식민주의 사학자라고 인신공격에 가까운 매도를 당하고
이 충격 때문에 대부분의 기존 학자들이 아에 손을 때게 만들어....
이렇게 재야사학자들이 설치는 가운데
1986년 조선일보의 특집기사가 쐐기포를 박아
광복특집으로 '국사 교과서 새로 써야한다'는 기획 기사를 연제하며
주요 내용은 식민사관에 물든 한국 사학을 비판을 하며 이를 시정하기 위해 국사 교과서를 새로 써야한다고해
재야사학자들은 주구장창 주류사학을 식민사학으로 매도하는데, 조선일보의 특집 기사는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지
이에 문교부는 국사 교과서 편찬 준거안(제 5차)을 만들고 개편 작업을 실행하게되
근데 한가지 논란이 되는 용어가 있는데
'일제강점기' 라는 단어야

일제강점기라는 용어는 북한이 만들어 낸 용어
북한은 근현대사를 서술할때
1945년 8월 15일을 기준으로
이전의 일제시기를 일제강점기라고 하고 이후를 미제강점기라고 표현해
첫번째 문제는 일제강점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것은,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인식하는 북한 역사 해석을 동조하는것에 인정을 하는 것이야
두번째 문제는 발표한 시기야
제 5차 준거안은 1987년 6월에 확정 발표
북한 자료의 해금 조치는 1988년 7월 시작
재야사학자들이 북한자료를 이전부터 접해오고 있었다는 것이야
주요 경로는 북한 - 일본(조총련) - 한국으로 알려져 있어
여기에 주의깊게 볼 사람이 있는데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
조동걸은 5차 준거안을 작성한 사람으로 민중사학이 본격적으로 대두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야
"북한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민족 공동의식을 유지하는 불가결의 조건으로서,
분단 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북한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민족 의식을 유지함으로써 통일을 앞당기게 하는 길"
<민중 통일사학의 실체와 그 충격 p151 ~ 152>
최근 서울시 공무원 시험 문제에서 북한 역사가 출제 되었다고해
보통 위의 기사를 보면, 무슨 좆같은 소리야? 하겠지만
민중사학자들이 보기에는 문제 될게 없어 위의 글에서도 나와있듯이
북한 역사를 배우는것이 분단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북한에게 친근감을 가지게할 도구로 보거든....
이렇게 1980년대부터 민중사학이 주류사학으로 떠오르고 기존사학을 밀어내버려
그런데 이때는 특히 북한의 연구 성과가 대거 유입 되던 시기야
88년 7월 북한 자료의 개방을 선언하면서 북한관련 서적이 본격적으로 쏟아 지는데 주로 역사 관련 서적이야

북한의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에서 펴낸 역사서가 주로 출판을 하는데
이렇게 북한의 연구성과가 본격적으로 남한에 유입되자 기존 남한 학자들은 업적을 재검토하게 되었고
진보성향의 사학자들이 주축으로 민중사학론이 표출해
그런 의미에서 민중사학은 마르크스주의 사학과 민족주의 사학이 접목되지
다시 말해 민중사학은 북한 역사학계의 연구성과가 남한에 유입되면서 대두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일종이야
그리고 지금 까지도 큰 영향을 끼치게돼
여기에 한가지 민중사학이 힘을 얻게되는 일이 더 있는데
졸업정원제 실시에 따른 선진 연구자들의 대거 임용
이때 82년도 부터 대학의 입학생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교수 부족사태를 겪게 되자
이제 박사과정에 들어 갔거나, 석사학위만 취득한 사람들이 자질을 갖추지 못했지만 교수로 뽑아
보수적인 학계에서 갑작스럽게 민중사학이 한자리를 잡게 되는 일이된거지
이렇게 올라온 학자들은 자신들과 이념이 비슷한 사람들을 계속 뽑아서 좌평향이 심해져
이후 여러 연구단체들이 설립되면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데


역사 문제 연구소(1986)
한국역사연구회 (1988)
한국근대사연구회(1987)
구로역사연구소(현 역사학연구소) (1988)
망원한국사연구실(1984)
전국역사교사모임(이하 전역모)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같은 계열이야.
조직적으로 학술운동을 전개해 민중사학이 본격적으로 활동을해
이 단체들을 전부 다 다루기에는 너무 많고
역사 문제 연구소(1986)
대해서 언급을 하고 넘어갈께
왜냐하면 라인업이 아주 ㅆㅅㅌㅊ거든
역사 문제 연구소의 초대 이사장이자 설립자가 바로~
그리고 박헌형의 사생아로 알려진 원경 스님과 함께 만든 연구소지
........
이런거를 보면 보통 친분은 아닌거 같아
거기에 다른 분들도 만만치 않아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국가보안법폐지, 주한미군 철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합법화 주장
임헌영(본명은 임한길이며 박헌영을 존경해서 개명했다고해)
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 등 수차례 공안 사건에 연류
*남민전 사건 : 60년대 인민혁명당, 통일혁명당 사건 관련자들이 출감 후 북한과 연계해서 만든 지하 공산혁명 조직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6.25남침설을 주장해오던 사람으로, 미군의 참전으로 인해 한반도 통일이 실패했다고 했어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서중석
아래에서 6차 개정안(준거안 파동)을 설명할건데 중심 집필진이 이분이야
하...
그립습니다 엔두 센세....
아무튼 마지막으로 우리 씨발 아저씨는
교육부가 제 6차 교육과정 국사 교과서의 개정을 위해 마련한 연구보고서 시안이
언론을 통해서 공개 되면서 준거안 파동이 일어나
주로 현대사 부분이 논란이 되어서 현대사 파동이라고 해
6차로 넘어가면서 바뀐 용어들은 모두 민중사학이 주장하는 용어들이며
국가 정통성을 부인하고 북한의 주장에 동조했다는 의견도 나와
특히 6.25 전쟁에 대해서는 한국전쟁이나 6.25전쟁이나 무슨 차이가 있을지 하지만
생각보다 의미가 담는 차이는커
6.25 전쟁은 북한이 6월 25일날 남침을 개시했다는 정확한 시기를 말함으로써
책임소재에 대해 분명한 지적을 하고 있어
한국 전쟁은 지정학적인 의미를 담고있는 말로
북한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소련과 미국의 국제전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게 내포되어있어
여론의 항의에 최종안에서는 몇가지 수정 된것처럼 보이지만
민중사학자들이 주장한 내용이 다수 포함되었다고 봐
1997년 제 7차 교육과정
신탁통치, 북한정권 수립 과정등 가면 갈수록 민중사학자가 주장한 새로운 부분이 늘어나
신탁 통치에서는 우익이 반탁운동을 전개 했다고 두리 뭉실하게 넘어가고 좌익이 뭘 했는지 서술을 안한다거나
북한 역사에 대한 비판이 대폭 후퇴를 해
왜 7차 준거안이 마지막이냐고?
아직도 뭔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민중사학자들은 국정교과서는 국가가 역사를 통제함으로써 국가주의를 주입시키는 도구다 라며
검정교과서를 요구하였고
2002년도 부터 <한국 근현대사> 과목은 검정으로 풀리면서 더더욱 좌경화가 진행하지
그리고 전교조(전역모)교사도 집필진으로 난립해서 개판이 되버려
심각한 좌경화에 문제성을 느끼고 '교과서 포럼'이 출범하면서
대안 교과서를 만들었지만
*2015년 국정교과서 사진
복한 당 기관지와 우리민족끼리는
'용납못할 역사 왜곡 행위"
"보수세력의 역사왜곡 책동에 맞장구를 치는 목적은 자라나는
새 세대들의 역사 의식을 마비시키고 남조선 사회 전반을 보수화 반동화 하려는데 있다."
어시스트를 확실하게 해줘 ㅎㅎ
한국의 교과서가 편향적일 수 밖에 없는거는 다른게 아니야
북한의 역사연구를 무분별하게 받아 들이면서, 기존의 사학을 식민사학이라고 매도해서 자리를 빼앗고
한국 사학은 민중사학에 대항할 수 있는 사학이 없어. 자정작용이 일어날거 같지도 않고.
그대로 무산된게 안타까워
읽어줘서 고맙다 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