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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날도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지하실 공사를 하러 나갔다. 몇 시나 되었을까?

밖에서 “전두환(편집자 주: 당시 보안사령관, 보안사는 현재의 기무사, 계엄과 무관함)이 물러가라” “신현확(편집자 주: 당시 최규하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국무총리)이 물러가라”는 구호소기와 함성 소리가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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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부터 일을 나가지 않았다. 일을 나가지 않는 대신에 시위군중 뒤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자세하게 기억하지를 못함). 며칠인지는 모르지만 MBC 방송국 앞으로 시위 군중들이 갔었다.

 

MBC 방송국 앞에는 몇 명의 군인들이 총을 차고 지키고 있었다. 시위 군중들은 그들을 향해 돌을 던지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셔터 문을 내리고 한동안 지키고 있더니 시위 군중의 기세에 눌리기 시작했는지 도망을 갔다. 시위 군중들이 그들을 쫓아가서 1명의 군인을 잡아가지고 구타를 했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냥 보내주자고 해서 무사히 보내었다. (미안하게도) 다른 일에 대해서는 별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21일은 내가 다친 날이다. 아침에 집사람과 다퉜다. 나는 우리 애들에게도 밖에 나가서 구경을 하라고 했다. 애들도 현실을 목격해서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왜 공수부대가 나온 지 직접 봐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집사람은 위험한 곳에 애들을 나가라고 한다며 궁시렁 거렸다.

 

나는 동네 친구 두 사람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고 쇠파이프를 가지고 걸어서 도청 앞까지 갔다. 도청 앞에는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공수부대 물러가라”고 외쳤다. 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은 밀어붙이자고 했다. 그 상황에서는 밀어붙일 만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한참을 구호를 외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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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22일) 시민들이 도청을 장악했다는 소문이 병원에서도 돌기 시작했다. 시민군들이 도청 옥상에 기관단총을 설치해놨다는 등 여러 가지 소문에 대해서 환자들은 옆 사람과 이야기를 했다. 병원에는 바닥에까지 환자들이 누워있었다. 나도 바닥에 있었는데 병원 문을 열고 내다봤더니 시민들이 총을 들고 차를 타고 지나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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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내 직업은 막노동이다. 애들이 7남매나 되지만 집에서 함께 사는 애들은 중학교에 다니는 애들 2명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뿐이다. 나머지 4명은 각자 다른 곳에서 따로 살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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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잡아가두고 병신 만들었는데, 또 얼마나 도둑질을 해쳐먹었는데, 어떻게 화해하고 용서를 할 수가 있는가? 부정과 비리를 밝히고 죄인은 분명히 시비를 가려서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생각대로라면 그놈들을 잡아다가 광주에서 광주시민이 심판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두환이가 구속될 때까지 끝까지 싸워야 한다. 그래서 두환이를 잡으러 박담사로 가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에는 꼭 결단을 내야 한다. 두환이 때문에 눈에서 피눈물 난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그걸 벌써 잊었는데 안 됐다고 하는 사람들 보면 속창시가 하나도 없는 사람 같다.

 

5.18에 대해서는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고 광주시민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그에 상응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역사적인 기념비라도 세워서 후세에는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교훈을 남겨야 한다.

 

 

 

1줄 요약: 문재인은 폭도

 

출처: http://archives.kdemo.or.kr/View?pRegNo=00877294